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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시락 공무원 내무부 재정담당관 손재식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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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누가 뭐라 해도 자기가 믿는 제 할 일을 다하는 사람들, 옹고집 인생이라고나 할까―. 사실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인데도 우리 주변에선 별난 일을 하는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이 눈에 띈다. 흔히 남들이 다한다고 해서 덩달아 부정에다 불륜에 섞여드는 주견 없는 사람들이 아닌, 이들의 어떤 인생-. 세속적으로 무능하다고까지 핀잔을 받는 가운데서도 자기의 신념을 지키고 사는 공복·기업인·시민 등…. 이런 어떤 인생의 미덕 속에 새 마음의 총합을 찾는 길이 있다.
내무부재정담당 부이사관 손재식. 올해나이 38세. 경남 밀양출신. 서울대 법대 졸.
대머리에 단단한 몸집이 얼핏 요새말로 「요령꾼」같은 첫인상이다.
그의 별명은 이런 인상과는 달리 「도시락 담당관」-. 1년 내내 도시락을 싸들고 나오는 공무원으로 이름나 있기 때문이다. 도시락도 1개가 아닌 2개. 격무에 쫓기면서부터 아예 저녁용 도시락까지 들고 다닌다.
그의 도시락지참은 지난 56년 5급 공무원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이래 15년째-. 그사이 직위의 승진과 함께 별명도 「도시락계장」「도시락과장」에서 「도시락담당관」으로 승진한 셈이지만 출장 때 이외엔 하루도 도시락을 안 싸온 날이 없다.
공무원이라면 당연히 도시락지참을 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도시락철학. 그렇지 못한 풍조가 사실은 정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락은 그의 생활과 너무나 직결돼있다.
손씨는 2남1녀의 자녀를 포함한 6인 가족의 가장. 서울 서대문구 대조동165의16 건평15평의 자택은 요즈음 시세로 약2백만원, 선친으로부터 받은 유산이다.
부이사관으로 승진하면서 배당 받은 서울관1-985호 「코로나」로 상오 8시30분쯤 정부종합청사에 도착, 차에서 내릴 땐 부인이 마련해준 두툼한 도시락가방을 끼고 내린다. 가방 안엔 점심과 저녁용 2개의 도시락이 서류뭉치와 함께 들어있다. 그의 일과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상오 9시10분, 장관주재로 부국장급 이상 회의에 참석, 이어 과장들에게 회의내용을 전달하는 한편 하루 업무와 중요정책에 관한 지시를 내린 후 결재, 정책입안 「브리핑」 등 업무처리…정오가 되면 다른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삼삼오오 구내식당이나 음식점에 흩어져 가는 사이 손씨는 따끈한 엽차 한잔에 도시락을 편다.
반찬은 김치와 시금치나물·깻잎·무우짠지. 수·토요일엔 「샌드위치」의 분식.
그를 아는 직원치고 점심때『담당관님, 점심이라도 함께…』하며 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처음에는 생활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 다녔지요. 그러나 이제는 도시락이 없으면 내 자신이 불편을 느낍니다』-무엇보다도 음식점에 나다니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 제때에 식사를 함으로써 건강에 좋고 청탁 등 유혹을 물리치며 급할 땐 단 5분만에 점심을 먹어치울 수 있어 좋다는 그의 도시락철학.
그는 하오 6시, 다른 부하직원들이 모두 퇴근하는 시간에 또 하나의 도시락을 혼자 먹어치우고 이어 6시30분에 국·과장급 회의에 참석, 한밤중인 8시 이후에 퇴근하더라도 피곤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밀린 잔무처리도 사무실에서 충분히 해내며 그날의 석간신문까지 골고루 볼 수 있는 시간여유를 갖는다는 것.
예를 들어 2만여원의 월급을 받는 4급 공무원들이 하루 2백원짜리 비빔밥이나 곰탕을 사먹는다 치더라도 한달 이면 6천원꼴, 차값과 담배값을 합치면 월급의 절반 이상이 지출되는 셈.
결국 이 같은 공무원생활은 근무시간의 낭비뿐만 아니라 『봉급만으로는 살 수 없다』며 스스로 부족 되는 생활비를 부수입이나 뇌물에 의존하는 부정을 범하게 마련이고 봉급만으로 사는 공무원을 오히려 무능하다거나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따돌리기 일쑤가 된다.
손씨에 따르면 그는 월급날(매달 20일)엔 집에 돌아가 부인과 함께 한 달의 예산을 짠다. 월급·수당 합쳐 5만2천여원에 수령액은 4만여원. 「지방행정」 등 잡지에 기고하는 원고료 수입 1만여원과 합해 예산액은 5만여원. 담배·술을 안하기 때문에 고작 용돈은 2천여원. 그는 남한테 의지 않는 대신 경조비·축의금도 일절 하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1만5천여원은 식대, 연료비(연탄) 1천여원, 장남 병권(11·대조국교4년) 차남 병두(8·대조국교1년) 군 등.
자녀들 양육 및 학비 1만여원, 문화비 4천여원, 각종 세금(전기·수도료 등) 2천여원, 잡비3천여원, 예비비 5천여원 등….
이만하면 근근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비록 「홈·서비스」는 영점입니다만…』
그는 「양입제출」이라는 그 나름의 생활신조를 갖고있다고 말했다. 즉 『들어오는 양을 보아 지출을 해야한다』는 생활원칙 그대로 현재의 수입으로는 술·담배를 할 수 없고 도시락생활이 제격이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들고 다닌다는 것이다. <주섭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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