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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에도 초코 조각에도 초코 초코홀릭의 세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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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호 14면

1 인형으로 제작한 유로 초콜릿 축제의 상징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주의 페루자는 한국 사람에게는 안정환 선수가 활약했던 축구팀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초콜릿으로도 유명하다. 20세기 초반부터 페루자 근교에 본사를 두고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초콜릿 ‘바치(Baci)’를 제작해온 회사 페루지나(Perugina) 덕분이다. 네슬레 그룹에 속해 있는 페루지나의 초콜릿 제작 전통과 기술은 움브리아 주 전체로 퍼져 현재 크고 작은 초콜릿 제작 회사들까지 이 지역을 초콜릿 명산지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매년 10월 이 도시에서 열리는 ‘유로 초콜릿 축제’가 올해로 20회(10월 18~27일)를 맞았다.

이탈리아서 열린 제20회 유로 초콜릿 페스티벌

2 초콜릿으로 만든 이탈리아 지도와 각 지역의 대표 관광 유적지들

시내엔 소녀시대 ‘초콜릿 러브’ 노래 소리
언덕 위에 형성된 도시 페루자의 중심부까지 걸어 올라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는데 다행히 땅속을 파서 만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다섯 번 갈아타고 밖으로 나오자 바로 축제가 열리는 도시의 중심가다.

시내 곳곳에서는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초콜릿 관련 노래가 흥겹게 울려 퍼졌다. 소녀시대가 부른 ‘초콜릿 러브’도 들렸다. 천막 부스에서는 100여 개의 크고 작은 회사들이 만든 5000가지 이상의 맛과 모양을 지닌 초콜릿들이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방문객을 유혹했다. 초콜릿을 아랍식 케밥의 회전 오븐에 구운 고기처럼 기둥으로 만들어 긁어주거나 손바닥만 한 사각형 초콜릿 케이크 위에 설탕을 녹여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처럼 제작하는 등 관람객의 시선을 끌기에 여념이 없다. 싸이의 팔찌 컬렉션을 론칭했던 이탈리아 자수팔찌 브랜드 크루치아니는 특별히 제작한 초콜릿 색상의 자수팔찌를 내놨다. 심지어 초콜릿을 넣어 만든 파스타도 보였다.

벨기에 회사 베일리스는 벨기에 초콜릿과 크림, 아이리시 위스키를 섞어 만든 ‘베일리스 쇼콜라 럭스(Baileys Chocolat Luxe)’를 처음 선보였다. 3년간 전 세계 200종이 넘는 초콜릿으로 실험했다는 음료를 시음해보니 초콜릿을 그 자리에서 녹여 마시는 것 같은 부드러움과 위스키의 향이 혀끝에서 오랫동안 맴돌았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주최 측이 중앙광장에 만든 조형물 ‘다크 리퍼블릭’. 이탈리아가 직면한 실업문제를 재조명하는 의미에서 10명의 조각가가 1500시간 동안 제작한 대형 초콜릿 이탈리아 지도다. 길이 13.5m에 폭이 6m로 총 1만4000㎏의 다크 초콜릿이 사용됐다. 각 주를 대표하는 유적지 조각 20개도 보였다. 이 작품을 보는 입장료 3유로는 청년 실업자 일자리 창출에 쓰인다고 했다.

20일에는 네 명의 이탈리아 조각가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앙 도로에서 에버그린이라는 주제로 1t이 넘는 블록을 조각했고 마지막 날인 27일에는 축제 20회를 맞아 페루지나가 스폰서하고 멜라 제과점이 만든 800㎏짜리 대형 초콜릿 케이크를 행사 참여자와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페루자 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설치된 린트사의 대형 곰 풍선 두 개는 기념사진 촬영장소로 그만이었다. 카카오 나무가 자라는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의 코너를 마련해 방문자들이 카카오 열매와 카카오빈을 직접 확인하고 관련 지식도 얻을 수 있게 했다.

3 페루자의 다크초콜릿으로 제작한 도메니코 핀토의 초콜릿 두상조각 4 린트 베어 앞에서 포즈를 취한 엄마와 아기 5 페루자시가 직접 마련한 인도네시아 코너. 인도네시아는 카카오 생산국 중 하나다

신이 먹는 신성한 음식이라는 의미
초콜릿은 신을 뜻하는 ‘테오(Theo)’와 음식을 뜻하는 ‘브로마(broma)’가 합쳐져 신이 먹는 신성한 음식이라는 의미가 담긴 테오브로마 카카오(Theobroma Cacao) 나무 열매를 가공해 만든 것이다. 카카오는 적도를 중심으로 위도 20도 사이에 위치한 지역 중 건기와 우기가 아주 뚜렷한 기후의 토양에서 재배된다. 산지별로 맛이 다른데 중남미산은 향이 강하고 아시아산은 지방 성분이 많다. 아프리카산은 가격이 저렴해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된다.

럭비공 같은 긴 타원형 카카오 열매를 쪼개면 흰 과육 속에 40~60개의 콩이 보인다. 열매를 바나나 잎으로 덮어 3~5일간 발효시키면 흰 과육은 발효되어 사라지고 카카오빈만 남게 되는데 이를 2주가량 더 자연 건조시킨 후 로스팅한다. 이때 카카오빈을 몇 도에서 몇 분 동안 로스팅하느냐가 초콜릿 제조사들의 가장 중요한 비밀이다.

로스팅을 마친 카카오빈의 껍질을 한 번 더 벗겨내고 빈을 잘게 부숴 초콜릿의 주원료가 되는 속 알맹이 카카오 닙스(cacao nibs)를 얻는다. 카카오 닙스는 알칼리 작업을 거쳐 신맛과 쓴맛을 중화시킨 후 곱게 갈아 열을 가하면서 저어주면 닙스 안에 있는 지방이 녹아나와 끈적한 죽처럼 변하는데 더 열을 가하면서 저어주면 ‘초콜릿 매스’와 ‘초콜릿 버터’로 분리된다. 이 둘을 적정 비율로 혼합하고 설탕·우유·향료 등을 섞어 굳힌 것이 가게에서 파는 고형 초콜릿이다.

쓰레기 줄이고 전기차 … 친환경 축제
주최 측은 축제가 움브리아주 지역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다양한 환경보호 이벤트를 추진했다. 친환경적 행사를 주관하는 업체 ‘에코콩그레스(Ecocongress)’와 협력하여 이산화탄소 및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고 자원과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했다. 또 행사에 필요한 홍보물이나 포장지는 지역산 종이를 사용했고 행사 내내 멀티유틸리티 회사가 제공한 100% 수력발전 에너지를 사용했다. 관광객 이동수단은 닛산의 전기차 리프(LEAF)였다. 친환경 축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어떤 이벤트보다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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