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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제 22화>부산통화개혁(12)김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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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통화조치에 오점을 남긴 사건이 하나-. 당시 한은 에서 최고령 직원이었던 업무부장 육쇄봉씨(현재무직) 의 통화개혁기밀누설 사건이었다.
2월21일 부산지검 김천수 검사는 육 씨의 부인 최 여사를 소환, 최 여인이 통화개혁발표가 나기 이틀전인 13일부터 이틀에 걸쳐 구화 1억3백만원 어치의 금5백36돈쭝을 사들인 사건을 심문했다.
즉각 육 씨를 불러 진상을 물었더니 집에 들러 세면도구를 챙기는 육 씨에게 부인이 어디 가느냐고 하도 따지고 들어서 귀찮은 나머지『통학개혁』이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집을 나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수사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데 결국 육 씨의 기밀누설은 사실로 밝혀졌으나 고의적인 누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불기소처분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신문은 요란했다. 2월22일자 사회면「톱」기사가 깎인 채 발행됐던 D일보는 23일자에 최 여인의 금매점 사건을 사회면「톱」으로 보도하면서 전날 기사가 깎인 경위까지 상세히 선명했다 석방시의 기사를 보면―.
최 여인은 13일 하오 은행업무 마감시간이 거의 다 됐을 때 상공은행부산지점에 들러 예금잔고 6천3백42만원을 2백만원짜리 보증수표30장, 3백만원짜리 및 42만원 짜리 각1장으로 분할, 인출했다. 최 여인은 이날 저녁 아들과 조카를 데리고 부산시내 석개 금은방에서 금3백27돈쭝을 샀다. 다음날인 14일(구정)에도 집에 있던 보증수표 4천만 원을 갖고 가서 금2백9돈쭝을 샀다는 것이다.
수사당국은 처음 이 사건에 적용할 법조문을 찾느라고 고생했다. 금매점 행위가 2월15일 이후에 있었다면 대통령긴급명령13호의 부수 조치인 강력한 내용의 특별 조치령을 적용할 수 있겠지만 봉학 개혁 발표 이전의 행위이기 때문에 군정법령19호, 폭리 등 취재에 관한 법령, 산금령, 헌법 중 어느 것을 적용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지를 몰랐다.
21일 하오 김 검사는 형법1백5조4호(폭리를 목적으로 경제질서를 교란한 행위)를 적용, 부산지법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으나 끝내 영장집행은 되지 않았다.
이 같은 사태에 대해 김 부산지법원장은『수사기관이 구속할 필요가 있다고 청구, 발부 받은 영장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구속영장의 남구행위이며 영장발부를 기화로 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밖에 안 된다』고 검찰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한편 신문은 기사 삭제에 대해 정보처 직원과 치안국정보수사과직원들이 22일하오 내사,『기사를 삭제하지 않으면 판매가 불가능할 것이며, 삭제하기 전에 인쇄하는 것은 종이의 낭비밖에 안될 것』이라고 말했고, 또 정보 처로부터『21일자 합동적신3편에 실린 금괴매점기사는 사실무근이므로 전재를 금지한다』는 공문이 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치안국경보 수사과장은 치안국 직원이 신문사에 간 것을『통화개혁이 실시되는 역사적인 중대시기에 즈음하여 사찰을 하러 간 것』이라 했다. 또한 윤 부산지검검사장은『검찰에서 발표한 사실이 없을 뿐더러 기자가 그 사건에 대해 물어 왔을 때 확실한 답변을 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송인상 한은 부총재는『그런 얘기는 잠깐 들었으나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직 육 업무부장을 불러 물어보지도 못했고, 사건 때문에 자세한 보고를 못 받아 무어라 말 할 수 없다』 고 논평했다.
육 씨에게 형사소추는 없었지만 한은으로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물어 그를 총무부 소속참사(부장급)로 발령 냄으로써 이 사건을 매듭지었다.
또한 조치 기간 중에 공비출몰도 잦았다. 세인을 크게 놀라게 한 것은 화폐교환현장인 전북 정읍군 고황유 금융조합지소의 현금약탈사건. 2윌19일하오7시 무장괴한 5명이 금융 조합 고부지소에 침입, 경비순경 1명을 사살하고 현금 39만9천9백환 을 탈취해갔다. 1주일 후 범인 1명(우공희·당시22세)을 잡았는데 그는 공비였고 압수한 것은 다발총 과 현금6백환 뿐이었다. 공비출몰이 특히 심한 전남화순지구에 파견됐던 한은 광주지점직원 계형복씨(현 대한금융단연수원교무과장)는 위험지구에서 용감하게 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벅찬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일지를 작성, 제출하여 당시 한은 광주 지점장 문상철씨(현 조명은행장)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이 일지는 한은 이 귀중한 사료로 보관하고 있다. 손씨의 일지를 보면-.
『매일같이 화순군내에는「빨치산」이 나왔다. 공비와 전투경찰대가 교전중인 지역을 통과하면서 각 면을 돌아다닐 때에는 소름이 끼쳤다. 나는 중앙은행원이라는「프라이드를 갖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맡은바 국가대사를 완수했다. ▲18일 이 양면에 도착. 요소마다 무장경관이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다. 하루종일 총성이 그치지 않아 교환사무가 불안하기만 하다. ▲18일 밤11시 반 이양면화리2구에 공비 10명이 습격, 쌀과 옷을 약탈. ▲21일 각종 물가의 고등은 통화조치이념의 상실이다. 현재 물가가 곧 가격으로 형성되니 폭리를 억제토록 하라고 경찰서장에게 요청했다. 지방자치단체가 구권으로 공금을 수금한다는 정보가 있어 즉시 중지하라고 통보했다. ▲22일 동면으로 가는 길에 경찰과 공비의 전투지역을 지나다가 우리가 탄「이스즈」 화물차의「타이어」에 총알이 박혔다. ▲23일 춘양면에 갔다. 하오5시공비 26명이 침입, 교환현장인 금융조합 유리창이 총격에 파괴되어 업무를 일시 중단했다. 공비 3명이 사살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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