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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파괴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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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내가 본 시위 구호 중 가장 흥미로운 게 1968년 프랑스 학생혁명 당시 파리 학생들이 사용했던 “우리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였다. 인간 사회는 일관성이 있는 것을 상당히 바람직하게 여긴다. 마음을 쉽게 바꾸거나 격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다 새로운 정보를 듣고 곧바로 저렇게 바꾼다면 주변에선 그에 대해 의구심을 품으면서 진짜 의도가 뭔지를 알고 싶어 한다. 미디어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다. 주요 기사라도 해당 신문의 이데올로기와 다르면 독자들이 잘 보지 않는 구석으로 밀릴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나심 니컬러스 탈레브(레바논계 미국 작가로 삶의 무작위성·개연성·불확실성을 주로 다룸)는 이런 현상을 때때로 언급했다. 하지만 최근 작은 이유로 이를 생각해보게 됐다. 사실, 나는 열여덟 살 무렵부터 한국에서 말하는 ‘주당(酒黨)’으로 불려왔다. 솔직히 말해 그런 게 크게 부끄럽지 않다. 역사적인 위인 가운데서도 술을 즐긴 사람이 더러 있을 뿐 아니라 술을 마시면서 얻은 경험의 대부분은 상당히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서 주변 사람들과 더 친해졌고 많은 추억도 얻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술 마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지방간’이란 게 생겼다. 내 상태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지만 몇 달 동안 술을 멀리했어도 아무것도 고쳐지지 않았다. 지방간임을 알게 된 건 내 생애 처음으로 받아본 건강검진 때였는데, 이를 받는 것 자체가 혹독한 시련이었다. 모든 인류가 누리는 기본적인 평등의 가장 확실한 증거이자 자기중심적 사고를 고치는 최선의 치료법이 바로 내시경 검사임을 알게 됐다.

 여담이지만, 지금 나는 기존 이미지를 파괴하며 이전의 나와 이별하고 있다. 비록 요즘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지방간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과감하게 알코올 소비를 줄이고, 운동을 더 하고, 식습관을 바꾸는 선택을 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너답지 않은 짓이야” “거짓말쟁이!”라든지 “흥, 그래 봤자 2분도 못 버틸걸. ‘소주’나 한잔 하러 가지” 등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특히 올해 초 맥주 사업에 투자하자 일부에선 황당하게도 내가 잠시 독주를 멀리하고 대신 순한 술로 바꾸려는 걸로 여겼다.

 이 때문에 내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나는 술 마시는 사람이자 게으른 글쟁이로 정의될 수 있겠다. 몇몇 사람은 내가 그런 부류에서 벗어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술 마시는 사람들은 대개 ‘재미’를 찾는데, 그래서 사람이 잠시라도 상투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변하면 실망하게 된다. 하지만 남들이 원한다고 해서 계속 그렇게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술을 끊어보면 우리가 사람과 사귀는 과정에 알코올이 얼마나 깊이 개입해 왔는지를 금세 깨닫게 된다.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무엇을 함께할 것인가? 그리고 술집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친구들을 만날 것인가? (커피숍에서? 말도 안 돼) 술을 마시지 않고 어떻게 사업을 하고 새 친구를 사귈 수 있겠는가?

 한국의 경우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한국 친구들은 내게 ‘한국 음주문화가 두어 잔 정도의 맥주를 마시며 계속 이야기를 나누거나 포도주를 곁들인 음식을 즐기는 유럽식이었으면 좋았을걸’이라는 말을 가끔 한다. 하지만 유럽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음주문화가 있다. 내가 속한 북유럽에 사는 영국인·아일랜드인·독일인·스칸디나비아인들은 전혀 그렇게 온순하게 마시지 않는다. 고국인 영국에서는 잘 마시는 게 사회생활에 유리할 정도다.

 물론 한국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이런 문화를 좋아한다. 맥주를 양껏 즐기고 싶다. 소주를 마시는 ‘2차’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사람 일이란 게 알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가끔 즐거움을 얻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는 있다. 주변 사람들의 뜻대로 술 마시는 사람의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더라도 최소한의 건강은 챙겨야 할 것이다. 한잔 하고 싶은 친구나 직장 동료가 있다면 부디 그들이 자신을 파괴하는 걸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