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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미래] 현대과학도 놀라는 전통胎敎의 효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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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김수용 교수는 얼마전 초음파 사진을 통해 임신 16주된 남아의 성기가 곧추 세워진 것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임신 25주 정도면 태아의 오감이 발달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생식기와 관련, 이같은 현상을 직접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다.

나중에서야 태아의 부모가 일주일에 두세차례씩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일반적인 가정의 태아에게서 나타나지 않는 신체적인 반응이 이들 부부의 태아에게 아마도 학습을 통해 일찌감치 찾아온 것으로 분석됐다.

임신 후반기 부부의 성행위에 대한 연구는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 태아에 미치는 영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태아는 부모의 오르가슴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아의 심장박동률이 빨라지거나 느려지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정상적인 규칙성을 잃기도 했다.

이는 과거 선조들이 임산부가 지켜야할 칠태도(七胎道) 가운데 제7도 '임신 중에는 금욕하라'의 이론적 배경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준다.

전통적인 믿음으로 치부돼온 태교가 과학의 힘을 빌려 정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나쁜 말은 듣지말고▶나쁜 일은 보지말고▶나쁜 생각은 품지도 말라는 삼불(三不)이나 ▶아름다운 말만 듣고(美言)▶선현의 명구를 외우고(講書)▶시나 붓글씨를 쓰고(讀書)▶품위있는 음악을 듣는다(禮樂)는 등 칠태도의 밑바탕에는 과학이 숨쉬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 과학자들도 태교와 일맥상통하는 자궁 내 환경에 대해 크게 관심을 쏟고 있다. 1997년 미국 피츠버그대 합동연구팀의 결과는 태교의 과학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5만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인간의 지능은 유전적 요소보다 자궁 내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며 "지능 형성에 대한 부모 유전자의 기여도는 48%에 불과했다"고 저명한 과학잡지 '네이처'에 발표한 것.

이전까지 부모의 유전자가 지능지수를 결정한다는 이론이 대세였으나 이 발표를 계기로 설 자리가 좁아졌다.

이미 여러 종류의 동물실험에서도 태교의 효능을 입증하는 자료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장 윗부분에 위치한 부신에서 글루코코르티코이드라는 호르몬을 분비해 면역기능이 약해지거나 우울증을 일으키는데, 이 호르몬이 뱃속의 생쥐에게도 전달되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람의 경우 임산부의 심장박동이 분당 60~70회인 반면 태아는 두배 이상인 1백40회의 심장박동률을 보인다. 여기에 임산부가 스트레스를 받아 심장박동이 10회 정도 빨라지면 태아는 두배인 20회 정도 빨라지게 된다. 결국 태아가 받는 영향이 모체에 비해 더 크다는 점에서 산모는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태교가 설득력을 얻는다.

서울대 이면우(산업공학)교수의 경우 지난해말부터 임산부의 이동전화에 동영상 아기 캐릭터를 전송,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는 '하이맘' 서비스를 하고 있기도 하다. 임산부의 심박동수가 태아에 영향을 준다는데 착안한 것이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고 태어난 생쥐의 경우 학습과 기억을 매개하는 대뇌의 해마 지역에서 유전자의 발현 정도가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결과적으로 해마의 형성과 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에 대해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경진 교수는 "임신 중 스트레스는 태아가 발생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유전자의 발현 양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태어난 생쥐는 성체가 된 뒤 난폭해지거나 우울증을 겪는 등 정신적으로 심각한 불안증세를 보이기 일쑤라고 김교수는 덧붙였다.

최근 들어 초음파와 광섬유 기술의 발달로 딸국질.손가락 빨기 등 태아의 움직임을 쉽게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태교의 효과는 실시간으로 입증되고 있다.

산모는 가급적 조용한 곳에서 조용하게 말하라고 하는데, 미국 플로리다 의대 연구팀에 따르면 자궁 밖에서 72데시벨(㏈)로 들리던 임산부 자신의 목소리가 자궁 내에서는 77.2㏈로 크게 측정됐다. 일반적으로 3㏈ 차이는 두배를 의미한다.

특히 시끄러운 소리가 클수록, 오래 지속될수록 태아의 호흡에 나쁜 영향을 줬다. 75㏈의 음향진동을 임산부의 복벽을 통해 태아에게 5초간 전달한 결과 양수를 삼키는 것이 관찰됐다.

양수가 줄면 저체중아로 탄생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실제 오사카 공항 근처에서 태어난 아기의 체중은 정상 수준에 못미쳤고 조숙아가 많았다는 보고도 있다.

99년 태교의 중요성에 동감한 50여명을 모아 '태교연구회'를 세운 한양대 의대 박문일 교수는 "60년대 유럽과 미국을 풍미했던 히피족의 경우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제2차 세계대전 때 수정이 이뤄졌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각종 소음에 시달리던 임산부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된 뒤 심근경색.당뇨병을 앓거나 동성연애자로 자라났다는 다수의 보고서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 40대의 사망률이 높아진 원인도 당시 40대가 6.25전쟁이 한창이던 50~53년에 태어났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0여년간 태아의 뇌파연구에 주력해온 김수용 교수는 조선 영조 때 사주당 이씨부인이 쓴 태교지침서 '태교신기'의 '스승이 10년을 잘 가르쳐도 어미가 열달을 뱃속에서 잘 가르침만 못하다'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김교수는 "태교는 머리가 좋을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풍부하고 건강한 아이를 얻기 위함이다"며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태중에서 국가 경쟁력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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