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보고서 내면 시진핑·리커창도 따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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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9월 9일 베이징(北京) 국무원발전연구센터(國務院發展硏究中心)에서 향후 10년 중국의 성장모델을 결정하는 의미 있는 학술토론회가 있었다. 강사는 『제3차 산업혁명』의 저자인 제러미 리프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참석자는 연구센터 각 부문 책임자와 국가에너지국 핵심 간부 등 3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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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킨 교수는 향후 중국의 3차 산업혁명을 위해 다섯 가지 지주, 즉 통신과 신에너지·신에너지보존·지능인터넷·물류교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 30년 중국의 발전을 이끈 석탄과 석유·우라늄·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산업은 이미 사양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경고도 했다. 이후 참석자들과 리프킨 교수 간에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그 후 한 달 보름 정도가 지난 지난달 26일 연구센터는 ‘383 개혁안’을 발표했다. 9일 개막하는 당중앙위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토론을 거쳐 확정될 개혁안은 8개 주요 개혁 부문을 설정했다. 그중 7번째 개혁 부문에 리프킨 교수의 말이 그대로 녹아 있다. 신에너지와 통신, 인터넷 거래로 국가경제발전 모델을 바꿔야 한다는 게 골자다.

 ‘383 개혁안’이 발표된 다음날 리즈쥔(李志軍) 연구센터 기술경제연구부 부부장 등 6명의 연구원은 한국으로 향했다. 연구센터 내 창조와 창업전략 분야 최고 전문가인 이들은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창조경제 정책의 핵심 당국자들과 관련 기업인들을 만나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눴다. 지난달 31일 귀국한 이들은 한국의 창조경제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함께 보고서를 내 중국 경제정책 당국자들에게 정책 건의를 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연구센터 측은 “383개혁 안에 포함된 혁신과 창조산업에 대한 후속 정책 마련 차원에서 이뤄진 해외연구 학습”이라고 설명했다.

 시진핑(習近平) 시대 향후 10년의 개혁 방안을 마련한 국무원발전연구센터는 보고서를 내기 전 이렇게 철저한 현장학습을 거쳤다. 이론과 현실의 갭을 줄이기 위해서다. 사회과학원과 함께 중국 정부의 최고 싱크탱크로 성장한 비결이다. 9일 개막하는 당중앙위 3차 전체회의(3중전회)를 앞두고 시진핑과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개혁을 알려면 이 연구센터 보고서를 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1981년 문을 연 연구센터는 경제 분야 개혁정책을 주로 연구하는데 최근에는 그 영역을 사회와 문화·외교 등 방면으로 넓히고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1978년 공산당 제11기 3중전회에서 개혁·개방 정책노선을 채택한 이후 개혁 정책만을 연구할 전문 연구소가 필요하다고 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중국 개혁정책의 산실이다. 연구원의 자질은 중국 정부와 당의 싱크탱크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데 대부분 행정과 학계연구 경험이 있다.

‘383 개혁안’을 진두지휘한 류허(劉鶴·61) 국가발전개혁위원회(한국의 기획재정부에 해당) 부주임은 지난 3월까지 3년간 이 연구센터 당서기를 역임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국유기업 개혁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 리웨이(李偉·60) 연구센터 주임에게 중국경제발전모델 전환을 위한 기업개혁안을 특별 주문해 ‘383 개혁안’에 포함시켰다.

 연구센터는 퇴직한 각계 전문가들을 활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원로 전문가들의 경험을 정책 입안에 반영해 시행착오를 줄이려는 전략이다. 다양한 학술활동과 해외 교류도 경쟁력을 키우는 비결이다. 지난 3월에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초청해 향후 중국의 대외전략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고 지난 8월에는 한쥔(韓俊) 연구센터 부주임 등 과학기술 분야 전문 연구원 일행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 방안을 놓고 현지 전문가들과 토론을 벌였다.

 올해만 50여 차례에 걸쳐 해외 연구나 학술 교류를 해 그 결과를 연구보고서에 반영했다. 이 때문에 연구보고서는 가장 현실적이고 시행착오가 적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예컨대 올해 첫 연구보고서인 ‘2013 부동산시장 분석’은 연구원들이 중국의 주요 도시를 돌며 부동산 가격 폭등이 대형주택 위주 보급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을 했다. 시 주석은 지난달 이 같은 보고서에 근거해 향후 서민주택 보급 비율을 두 배 이상 늘리도록 지시했다.

연구센터 산하에는 1개 연구원(중국개혁발전연구원)과 11개 연구소, 7개 연구부를 두고 있다. 박사급 전문 연구인력은 연구원 80명, 부연구원 48명, 수석이코노미스트 11명, 수석엔지니어 1명, 원로전문연구원 57명 등 모두 197명이다. 그러나 보조인력이 많아 연구인력은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예산은 151억 위안(약 2조6000억원). 올해 공개된 연구보고서는 178편이다. 그러나 비공개 보고서가 많아 이들을 합할 경우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리 주임은 “앞으로 국내외 최고 전문가들을 더 영입해 선진국의 개혁정책을 집중 연구하고 이를 국가미래전략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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