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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파의 끝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5일 밤의 「유엔」표결로 중공은 고립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
중공의 이 고립은 20여년 전 미국에 의해 과해졌으며 또 주기적으로 중공 스스로 택한 것이었다.
미국은 상징적인 순간에 와서 조용히 그저 잠자코 있었지만 대만을 잔류시키려던 배후 노력은 중공의 「유엔」가입극을 오히려 고조시켰으며 보수파의 감정을 격화시켰을 뿐이다.
「닉슨」대통령은 중공가입에 관한 「유엔」의 조치보다는 그의 중공방문계획을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의 「제스처」로 국부문제가 보다 호의적으로 다뤄질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다수 「유엔」회원국들 중에는 미국의 대중정책전환을 완결시키려는 욕구가 잠재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 때문에 새로운 대중정책을 변호하려는 「닉슨」입장이 복잡해 질 것이며 미국의 대「유엔」관계에 서로 국내의 초조한 감정이 반영되게 마련이다. 「유엔」내에서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26일의 표결과 자유중국의 탈퇴는 국제사회의 재편과 변화를 계속 촉진시킬 것이라는데 의견이 일치되고있다.
몇 가지 중요한 추세들이 이번의 표결결과를 가져오는데 함께 작용한 것이다.
첫째 「닉슨」대통령이 대 북평 정책을 적대관계에서 화해에로 극적 전환한 것.
둘째 중공이 다른 외국과의 관계에서 전적으로 단절되었거나 소외된 상태에 있었던 문화혁명의 격동기에서 거의 동시에 회복된 사실.
세째 자의로든 아니면 군사적·경제적 지원의 압력으로든 미국의 지도력을 따라온 대부분의 비공산국가들과 우방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쇠퇴해온 것.
네째 이와 정비례로 중공은 신생 대국으로의 승인을 점차적으로 얻게 되었고, 핵무장에 따라 미국·소련·일본 등과 함께 영향력을 행사할 날을 눈앞에 두개 되었다는 점.
표결당시 엿보인 각국 입장의 표변은 「이스라엘」과 「포르투갈」의 경우가 그렇듯이 모든 나라들의 재빠른 사태에의 적응태도를 단적으로 예시해주는 것이었다.
「워싱턴」·「모스크바」·북평이 새롭고 복잡한 삼극구조를 형성함에 따라 여타국가들도 새로운 관계를 맺어 안전과 이득을 추구할 것이다.
인도가 소련과 새삼 유대를 맺고 안전을 추구하는 것은 단적인 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파키스탄」은 수년 전부터 중공과 더욱더 접근해왔던 것이다.
25일의 표결에서 「아프리카」와 남미국가의 표가 양분됐으며 앞으로도 이들 국가의 정책 역시 양분화 될 것이다. 고통스러우나 충실하게 미국편을 들어 패배의 고배를 마신 일본은 이제 중공과의 새롭고 독자적인 관계를 모색하려 할 것이다. 미국의 주요 서방동맹국들은 미국으로부터의 독립과 미국과의 통상경쟁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듯 이번 「유엔」총회의 최종단계에서까지도 미국에 가담할 것을 거부했다.
「유엔」에서의 역전 때문에 물론 「닉슨」대통령이 대만주둔 미군을 철수하거나 국부를 중공에 대해 무방비상태에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평 측은 대단한 해군력을 갖고있지 않으며 대만을 무력으로 점령할 듯한 우려나 증거가 엿보이지 않는다.
이제 「유엔」이 대만에 대한 중공의 영유권을 사실상으로 인준한 이 마당에 「닉슨」대통령으로서는 중공과 대만간의 평화적 재통합을 위해 노력할 시간적 여유와 보다 좋은 여건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닉슨」대통령은 국내와 국외에서 동시에 가해진 압력 때문에 몹시 난처했다. 즉 중공과의 화해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대만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데서 얻는 이익보다 크다면 대 중공 화해를 별로 꺼리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결국 미국이 값비싼 월남전을 수행한 것도 자기들의 「개입」에 관한 신빙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중공과의 화해가 더욱 폭 넓게 진행되어 인지반도로부터 미국이 철수할 경우 다른 우방국들은 미국의 지원과 해결책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바로 여기에 진정한 위험이 있다.
「로저즈」국무장관과 「부쉬」대사가 마지막 순간에 그토록 노력한 것도 이러한 위험을 염두에 둔 때문이다. 그리고 「닉슨」대통령이 「유엔」의 표결에 대해 좀 과격한 반응을 보일 것이 예상되고 또 국부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개인적으로나마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북평여행은 「유엔」에서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지장이 없었다. 그는 북평여행을 무엇보다도 변호할 것이다.
26일 국무성에서 사후처방 격으로 분석이 있을 경우 그것은 분명 행정부로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대통령의 보좌관이 4개월도 못되어 두 번째로 현재 방문하고있는 북평에 대해 전폭적인 명예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는 결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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