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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도 못 가는 세종시 버스도로 … 한쪽선 몰래 인도 없애고 차도 확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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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달 31일 세종청사 앞 도로가 출퇴근 차량으로 막혔다. 왼쪽 급행버스노선(BRT)은 10~20분에 한 대씩 다니는 전용버스를 위해 비워놓았다. [프리랜서=김성태]

지난달 29일 오전 8시20분,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단지(행복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오가는 차들로 북적였다. 특히 공주에서 청원IC로 가는 도로와 만나는 네거리는 신호등이 세 번 바뀌어야 건너갈 정도로 혼잡했다. 이 도로는 편도 3차로이지만, 1개 차로를 무정차로 달리는 BRT(간선급행버스체계) 버스 전용으로 내주는 바람에 사실상 편도 2차로다. 개인택시 기사 이경택씨는 “행복도시 주민이라고는 첫마을과 세종청사 6개 부처 공무원이 전부인데 벌써 차가 막히니 인구가 늘어나는 내년엔 교통지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는 전시행정의 종합전시장이다. 시는 ‘그린(green) 시티’를 표방한다. 사람 위주의 친환경 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 때문에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이나 자전거가 다닐 수 있도록 하겠다며 도로와 주차장을 도시 규모에 비해 크게 줄였다.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옥상정원. 프리랜서=김성태 부작용은 1단계 입주부터 곧바로 나타났다. 출퇴근 도로가 막히고, 세종청사와 마을 주변의 주차난이 심각해졌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은 최근 세종청사 2단계 지역을 중심으로 몰래 도로 확장공사에 나섰다. 이미 조성된 인도를 파내고 차로를 넓히는 공사이지만, 행복청은 “공사로 파손된 인도를 보수하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텅 빈 전용차로를 달리는 BRT 버스도 사정이 어렵다. 대당 3억원이 넘는 BRT버스 12대의 최근 하루 평균 이용객은 2500명이 채 못 된다. 한 대당 하루 종일 200명 남짓한 승객을 태우는 셈인데, 최소 500명은 돼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 세종청사 주차난은 2단계로 4800명의 공무원이 내려오는 연말이면 더 심해질 전망이다. 2단계 청사에 입주할 교육부 등 6개 부처의 주차공간은 2578면에 불과하다. 그나마 1085면에 불과했던 애초 계획에 인근 상가부지를 용도변경한 야외주차장 8곳 1493면을 보탠 것이다.

 세종시가 내세우는 또 다른 대중교통 수단인 자전거 인프라도 불균형의 극치다. 세종청사 3동 앞에는 행복청에서 운영하는 무료 대여자전거 20대가 거치대에 세워져 있다. 지난 7월 설치됐지만 하루 평균 이용객이 단 6명에 불과하다. 대여소가 한 곳밖에 없어 자전거를 반납하려면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한 공무원은 “6개 부처가 길게 늘어서 있는 세종청사의 중간에 대여소를 하나 설치해놓는 것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전 유성지구와 세종시를 연결하는 1번 국도 8.78㎞ 한가운데에는 태양광 전지판 지붕을 얹은 명품 자전거 전용도로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용객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유성에 숙소를 두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한 고위공무원은 “출퇴근길에 이용해보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 10명을 만나기도 어렵다”면서 “정작 행복도시 안으로 들어서면 자전거길이 곳곳에 끊어져 있고 턱이 높아 자전거 출퇴근이 위험하다”고 말했다.

 설계 당시 ‘열린 청사’의 본보기로 자랑했던 세종청사의 ‘하늘정원’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행복청은 당초 청사를 민간에 개방한다는 취지로 총 길이 1.5㎞의 1단계 청사 옥상에 정원을 꾸몄다. 조성비용만 90억원, 유지·보수 비용으로도 연간 4억1000만원이 들어가는 명품 정원이지만 민간에 개방되지 못했다. 입주 전부터 이미 가급 보안시설인 정부청사는 민간에 개방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안전행정부는 2단계 청사 옥상정원 조성 비용을 절반으로 깎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 김수현 사무처장은 “교통과 주차, 세종청사 문제는 관료들의 근시안적인 탁상행정이 빚어낸 결과”라고 비판했다.

세종=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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