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세종청사 1년 … 3고·3다·3소 도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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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중심구역에 건설되고 있는 정부 세종청사 2단계 구역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 2단계 이전 40일을 앞두고 있지만 청사 주변은 온통 공사 중이다. 다음달 13일 교육부·산업부·문화부 등 6개 부처가 이전하면 세종청사 공무원은 1만 명에 이른다. 주차난과 중심구역 교통체증, 주택난이 한층 악화될 전망이다. [뉴시스]

지난 1일 오후 10시20분쯤 충북 청원군 오송역. 서울에서 1박2일간 부처 간 업무협의를 하고 돌아온 기획재정부의 K과장이 기차에서 내렸다. 서류 뭉치와 속옷·양말이 든 배낭을 멘 그는 역사를 빠져나오자마자 서둘러 세종시로 향하는 급행버스(BRT) 막차에 몸을 실었다. 부처 협의가 많은 그는 월평균 5~6회 서울 출장을 다닌다. 출장 중에는 ‘디지털 노마드(유목민)’가 된다. 세종청사에 있는 부하직원들과 수시로 업무협의를 하고, 문서 작성과 업무지원을 하느라 휴대전화를 끼고 산다. 긴급한 업무를 처리하려면 세종로 서울청사 스마트워크센터로 가야 한다. 묵을 모텔을 찾는 것도 일이다. 그는 “광화문 근처는 숙박비 때문에 부담스럽고 도심이면서 한적한 숙명여대 근처를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과장급 숙박비가 규정상 4만원이어서 여기에 맞춘 숙소를 찾기 위해서다. 업무가 새벽에 끝나면 1만원짜리 사우나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한다.

공무원 23% 하루 4~5시간 출퇴근

 세종시의 비효율이 여전하다. 지난해 9월 총리실을 선발대로 석 달 후 기획재정부 등 6개 정부부처가 이전을 완료한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상당수 공무원은 하루 왕복 4~5시간씩 비좁은 통근버스에서 새우잠을 자며 출퇴근한다. 전체 세종청사 공무원의 23%에 이르는 1400여 명이다. 상당수 공무원은 통근버스에 오르자마자 여행용 베개와 수면용 눈가리개를 꺼낸다. 해양수산부 Y국장은 “자녀 교육 때문에 힘들어도 내가 출퇴근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무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17일 세종청사 6개 부처에 근무 중인 공무원 1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본지 설문조사에서도 세종시로 정부부처를 옮긴 이후 업무강도와 시간이 늘어난 반면 업무 효율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 84% “업무효율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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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따르면 업무강도와 시간은 세종시 이전에 따라 공무원 세 명 중 한 명 이상이 늘어났다고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업무 효율이 떨어졌다는 응답자가 8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변화가 없다는 응답은 14%에 그쳤다. 업무 효율이 떨어진 주요 이유(복수응답)로는 세종과 국회 업무 원격화, 간부들의 잦은 부재, 정부부처 분산이 꼽혔다. 이 중에서도 국회를 꼽은 응답자가 63%에 달해 국회 출장이 업무 비효율의 최대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 효율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복수응답)로는 국회 이전이 단연 최고로 꼽혔다. 응답자의 77%가 국회 이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음으로는 안전행정부를 비롯한 행정부처의 세종시 이전이 꼽혔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부처는 서울·과천·대전·세종으로 분산돼 있어 세계에서 유례없는 비효율 체제가 됐다.

 청와대 이전과 서울(과천) 복귀를 주장하는 공무원도 적지 않았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데도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현재 세종청사 체제의 비효율이 그만큼 크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다음 달 13일부터 강행되는 정부부처 2단계 이전 이후에도 업무 여건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반응에서도 나타났다. 큰 변화가 없다는 응답이 46%, 나빠진다는 응답이 22%에 달해 응답자의 68%가 특별히 더 나아질 게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개선된다는 전망은 32%에 그쳤다.

국회 출장이 업무 비효율 최대 원인

 생활 여건도 여전히 열악하다. 3고(高)·3다(多)·3소(少) 도시라는 얘기도 나온다. 3고는 밥값·월세·교통비, 3다는 안개·먼지·기러기아빠, 3소는 병원·주유소·주차장을 의미한다. 물가가 오르면서 3고가 빚어지고, 환경영향, 건설 공사, 공무원 단신부임으로 3다가, 시설부족으로 3소의 고통이 빚어지고 있다.

 세종시의 자녀 교육 환경도 아직 열악하다. 50대 초반의 농림축산식품부 여성 공무원은 “자녀 교육환경이 열악해 세종시로 거주지를 옮긴 사람들 대부분이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는 당초 소규모 인원에 전자교실을 운영하는 첨단교육 체제를 구축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학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 한 기재부 공무원은 “학부모들이 전자칠판이 공부에 방해가 되므로 활용시간을 줄여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교육청 방침이라는 이유로 수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방과 후에 아이들 보낼 곳이 없다”는 호소도 많다. 기재부의 40대 초반 서기관은 “중 3 아이를 대전에 있는 우수학군에 보내려고 했으나 지원 체계가 안 돼 있어서 사실상 포기했다”며 “내가 통근을 하더라도 다시 서울로 역(逆)이사를 갈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동호·최준호·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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