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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해소·완화됐다는 11건 중 절반은 아직 ‘진행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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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호 03면

#지난달 30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장.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국회가 진주의료원을 재개원하라는 국정조사특위의 결과보고서를 채택했는데 재개원 방안을 마련했느냐”고 묻자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질문의 전제에 문제가 있다. 진주의료원 사무는 지방사무인 만큼 국정조사나 국정감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순간 회의장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김태환 안행위원장이 나서서 “홍 지사는 톤을 낮춰 달라. 감정이 앞서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나서야 다음 질의가 이어졌다. 진주의료원 폐쇄를 둘러싼 갈등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국무조정실은 올 연말까지 복지부가 ‘지방의료원 발전 종합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라는 이유로 진주의료원 문제를 ‘갈등 완화’ 사안으로 분류했다.

국무조정실 ‘갈등 과제 추진 현황’ 속사정을 보니

# “매일 미사와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주민 입장에서는 공사가 백지화되기 전에는 절대 해결된 게 아니다.”(제주 강정마을 주민)
“갈등이 줄긴 했지만 해소되진 않았다. 갈등 과제에 올려놓고 계속 모니터링해야 할 사안이다.”(국방부 관계자)
“이미 공사가 50% 이상 진행됐기 때문에 큰 틀에서는 갈등이 해소된 것이나 다름없다.”(국무조정실 관계자)
제주 민·군복합항 건설 문제에 대해서도 각 이해관계자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국무조정실은 지난 3월 국방부·국토부·제주도 간 민·군 항만 공동사용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를 ‘갈등 해소’ 사안으로 분류한 상태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이 제출한 ‘갈등 과제 추진 현황’(10월 현재)을 분석한 결과 66개 갈등 과제 중 갈등이 해소됐거나 완화됐다고 분류한 11개 사안(16.7%) 중에서도 사실상 갈등이 지속되는 경우가 거의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국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됐던 진주의료원과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정댐 건설과 용유담 명승 지정 등은 ‘갈등 완화’로 분류한 데 이어 제주 민·군복합항 건설과 과학비즈니스벨트 부지 매입비 분담은 ‘갈등 해소’로 분류해 놓고 있었다.<그래픽 참조>

정부 내 컨트롤타워 부재도 한몫
국무조정실 자료에 따르면 일부 이해당사자 간 합의(MOU 등)나 주무부처의 관련 계획 수립만으로 갈등이 해소 또는 완화됐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반구대 암각화 보존이나 과학비즈니스벨트 부지 매입비와 관련한 MOU 체결은 오히려 MOU 자체가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카이네틱(투명 물막이) 댐 건설 MOU’를 체결한 것을 갈등 완화의 이유로 꼽았지만 이번 국감에서 “카이네틱 댐 건설은 문화재보호법 위반”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카이네틱 댐이 오히려 댐과 맞닿은 암각화 양쪽 측면을 훼손하거나 주변 경관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학벨트의 경우에도 충청 지역 시민단체들은 “원안은 문제가 없는데 정부가 국고보조금으로 부지를 매입한다는 대선 공약을 깨고 대전시와 MOU를 맺으면서 ‘과학벨트 수정안’을 강요하고 있다”(충북경실련 이두영 사무처장)라고 비판하고 있다.

‘갈등 해소’와 ‘갈등 완화’로 사안을 분류하는 기준도 모호하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갈등의 실마리가 마련되면 ‘갈등 완화’, 갈등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갈등 해소’로 분류했다. 과제마다 성격이 달라 일률적인 해결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상 갈등 해결을 위한 시스템적인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홍지만(대구 달서갑) 의원은 “특임장관이나 정무장관 등 갈등을 관리할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것도 정부 차원의 갈등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갈등 관리 관련 법안은 국회서 낮잠
넉 달 동안 정부가 갈등 과제 해결을 위해 소집한 회의는 단 세 차례. 갈등 과제 관리를 위해 매달 열기로 했던 갈등점검실무협의회는 지난 6월과 7월에 두 번 열린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더욱이 국무조정실이 주재하고 중앙행정기관 관계자 20여 명이 참석하는 이 회의는 1시간여 만에 끝났다. 지난달 열린 분기별 정기회의까지 세 차례의 회의에서 한 번이라도 논의된 과제는 밀양 송전선로 건설 문제 등 총 10개에 불과했다. 국무총리가 갈등 현장을 방문한 경우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6월), 밀양 송전선로 건설(9월) 등 두 번뿐이다.

선제적 갈등 관리도 아쉬운 부분이다. 정책 결정 전에 갈등을 미리 예측해 보는 갈등 영향분석을 실시한 것은 서울대 법인화 관련 국유재산 이전과 새만금 매립지 관할권 분쟁 등 전체 66건 중 네 건에 불과하다. 국무조정실은 당초 갈등 관리 과제를 선정하면서 ‘조기경보체제를 통한 선제적 갈등 관리’를 강조했지만 사실상 ‘현재진행형’ 갈등만 겨우 다루고 있는 실정이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기관 간 갈등과 비협조, 행정력 낭비 등은 곧바로 사회경제적 손실로 이어지는 만큼 반드시 선제적으로 조정되고 관리돼야 한다. 5년 만에 국무조정실을 부활시킨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허술한 갈등 관리의 틈새를 파고드는 행정편의주의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부처 간 합의나 MOU 체결을 통해 손쉽게 갈등 해소나 완화를 결론지으려는 유혹이 그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주무부처 입장에서는 갈등 과제 목록에서 빠지는 게 급선무인 만큼 장기적 숙제는 은근슬쩍 뒤로 넘기고 우선 급한 불부터 끄려고 하기 쉽다”며 “합의가 됐다 해도 실제로 개선이 이뤄질지는 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의원들도 이번 국회에서 주먹구구식 갈등 관리를 지양하고 체계적·선제적 갈등 관리를 위한 법안들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갈등관리기본법’(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국가공론화위원회법’(새누리당 김동완 의원), ‘국책사업국민토론위원회법’(민주당 부좌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김동완 의원은 “한국에서는 용산 사태나 제주 민·군복합항 건설 문제 등 공공갈등이 정치권 갈등으로 번지면서 악순환이 반복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입법·사법·행정부와 지자체·시민단체 등에서 추천한 위원들이 한데 모여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위원회 구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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