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어렵다고 ? 이만한 진통제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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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이번 주제는 ‘11월, 시간의 조각을 맞추며’입니다. 해는 짧아지고 바람은 차져서 한 해가 저무는 그림자가 짙어지는 때, 문득 세월을 돌아보는 나침반 같은 책을 골랐습니다. 화살처럼 날아가는 하루하루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이 갈피갈피 숨쉽니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240쪽, 2만8000원

공항부터 미술관까지, 연애부터 불안까지, 이 남자가 건드리지 않는 주제는 무엇일까 거꾸로 지워나가게 된다. 한국 출판시장에서 스위스 출신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44)은 이제 보통명사가 됐다. 우리 피부가 원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맞아, 맞아’ 입술을 달싹거릴 만한 현실 밀착형 주제를 찾아 사실에 충실한 글을 써내는 그의 재주는 이름과 달리 보통이 아니다.

 이번에는 미술의 기능 얘기다. ‘예술을 위한 예술’ 같은 얘기는 집어치우라고 정면 돌파하는 태도가 거센 태클을 거는 축구선수 못지않다. 미술품은 인간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 마약이나 진통제처럼 치유의 기능을 한다는 단언이 시원스럽다.

 알랭 드 보통은 영국 출신 미술사가 존 암스트롱(47)과 미술에 대해 답답했던 얘기를 나눈 뒤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에 대해 두 사람이 정의한 지표를 일곱 가지로 정리했다. 불완전한 기억의 보충, 이상세계에 대한 희망 표현, 삶의 슬픔에 대한 격조 있는 이해, 정서적 균형 복원, 타인의 경험을 통한 정신적 성장, 세상을 평가하는 감각 교정이다. 원제가 ‘치유로서의 미술(Art as Therapy)’인 이유다. 한국 사회를 휩쓰는 치유, 힐링 열풍을 어찌 알았을까 싶다.

 그 동안 예쁘고 안락한 그림보다 과격하고 파격적인 작품에 전문가들이 별점을 더 줬던 까닭은 무엇일까. 알랭 드 보통이 파악하기로는 예술계가 전범처럼 휘두른 ‘독자적인’ 네 가지 평가 방식 탓이다. 기술적 성취에 대한 해석, 정치적 독법, 역사적 해석, 충격-가치 독해다. 대중이 예술을 즐기는 길과는 영 다르다.

 그리하여 이 책이 강조하는 다섯 번째 독법이 나온다. 예술을 치유의 방편으로 보는 것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까닭이 이렇듯 각자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느끼는 구멍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어서 허전한 자신의 구멍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자신에게 위로가 되는 예술을 남 눈치 보지 말고 맘껏 즐기면 된다는 말씀이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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