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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질의 추구를 다짐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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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밝은 내일에의 희망과 용기를>
중앙일보는 오늘 지령 1860호로써 창간 6주년을 맞는다. 6년 전의 오늘, 국내외의 큰 성원 속에서 발족한 본보는 그 동안 짧은 시일 안에의 우리 언론사상 유례없는 장족의 발전을 거듭,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유력지로서의 성가를 쌓아 올린 것을 겸허하게 자긍하고자 한다.
중앙일보는 창간이래 계속 모든 국민들에게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바라보면서, 밖은 내일에의 희망과 용기를 갖기를 고취해왔다. 진취적인 자세로 생산적 신문 만들기를 자기해온 본보의 이러한 「칼라」는 앞으로도 고수될 것인바, 이는 인간 이성의 본질적 발전지향성과 그 도덕적 선성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신념을 반영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병들고 어둡게 하고 있는 온갖 사회적 부조리와 도덕적 퇴영이 우심할수록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 신뢰 때문에 더 한층 우리 조국의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수유도 저버릴 수 없는 것이다.
회고컨대, 중앙일보는 지난 6년간, 해마다의 연두사와 해마다의 창간 기념사를 통해 『본질의 추구』를 한결같이 외치면서 매몰되어 가는 인간가치의 회복과 도덕적 차원의 주체성확립을 강조해왔으며, 물질적 대량 속의 도덕적 퇴폐를 타파하여 새로운 도의질서를 정서할 것을 제창해왔다. 우리가 주장하는 이러한 본질의 추구는 일견 우원한 것 같으면서도, 실상 최근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 현상들의 기저를 통찰할 때 그것이 얼마나 절실한 당면문제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중적 시련에 직면한 한국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이중의 의미에서 큰 역사적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그 첫째번 도전은 밖으로부터 밀어닥친 국제정세의 조류가 우리로 하여금 국가존립의 「이데올로기」자체를 투철하게 재정립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의 도전은 최근 10여년내 우리 사회 안에 누적된 온갖 부조리가 너무도 우심하여 어쩌면 자유사회의 기본질서마저 무너뜨릴 만큼 심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라 할 것이다.
범세계적인 해빙조류의 확대는 이제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신주단지처럼 모셔온 정신적 지주의 하나였던 반공정신의 실체에 대해서도 뚜렷한 의미 내용을 부여하도록 강요하고 있으며, 이것 없이는 국민의 정신적 방황은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한편에서 여전히 교조적이며 호전적인 북괴집단의 무장도발을 목도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그들과 마주앉아 인도주의와 세계평화를 운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얄궂은 상황의 조성은 다시 말해서, 교조적 유물주의의 「이데올로기」로 중무장한 북괴 도당들에게 한국 국민의 정신상황을 마음대로 교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줄 수 도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기 맞설 아무런 사상적 대비도 없이 민주주의적 제 관행과 그 제도의 가치에 대해서조차 공공연한 회의론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우리 위정 당국자가 비상한 결단과 용기를 가지고 안으로 인간 선성의 발휘와 민주주의적인 제 가치의 현현을 우리 사회내부에서 촉진하고, 밖으로 국제사회에 대해서 우리 국가의 평화 지향적이며 개방 사회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정치의 일대 유신을 단행해야할 당위 앞에 직면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의 일대 유신 단행해야할 때>
무릇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정의 대경대도는 국가 존립의 기본이념을 뚜렷이 밝히는데 있다 하겠거니와 국내외적으로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하고있는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새삼 본질의 추구를 외치면서, 위정자에게 내정면에 있어서의 국체의 기본이념에 입각한 일대개혁을 촉구하는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견지에서 우리는 최근에 일어난 광주단지 사건을 비롯하여 사법파동·인술파동·대학교원들의 자주선언, 그리고 KAL빌딩 난동 방화사건 등 일련의 사회적 사건들이 모두 공통된 뿌리에서 나온 것임을 지적,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요컨대 최근 10년래 강행된 편집적 경제제일주의의 결과요, 또 그것들은 이미 굳어지기 시작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우리 내부의 취약한 정신적·도덕적 구열을 통로로 해서 일시에 폭발한 것이라는 사실인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부 위정자 가운데에는 아직도 세계 몇 번째의 고도성장과 국민소득 배증이라는 통계적 마술을 가지고 그것이 국민 전체의 복지나 정신적 행복감과 일치할 수 있는 것처럼 강변하는 경망한 편집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재언할 필요도 없이 경제나 물량은 본래가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의 후생과 복지를 보강하기 위해 추진됐다는 그 경제성장 시책이 바로 그 주체인 국민들로부터 폭력적인 저항을 받고 있다면 이는 확실히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경제성장이 일부 특권층에 의한 농단적 부의 축적과 사회적 사치·낭비만을 조장하고, 그 사이 대다수 국민은 풍요 속의 빈곤을 반추하면서 절망적인 소외감으로 도도한 도덕적 퇴폐에 몸을 내던지지 않을 수 없다면 본말의 전도도 유만부동인 것이요, 그 광정을 위해서는 역시 경제시책의 수립 과정에서부터 다시금 원칙과 본질의 추구라는 본원적인 요청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다시 본질의 추구를 제창한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오늘날 전 인류의 생활전통과 정신상황은 확실히 전환기적 제 양상이 빚어내는 「케이오스」(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다. 인류문명의 오늘을 배태케 한 도덕적 지주였던 종교나 철학이나 가족제도, 또는 그 밖의 모든 전통적 가치질서는 이미 국민의 현실생활을 기속하는 힘을 잃은지 오래이며 그에 반비례해서 인류가 그 동안의 영영신고 끝에 이룩한 경제적 번영과 기술혁신의 성과는 도리어 인간에 의한 인간불신과 도덕적 퇴폐를 가속화하고 풍조화하는 모순을 낳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비극은 우리의 경제입국정책이 처음부터 원칙에 어긋난 방법과 그릇된 목표를 향해서 추진됐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다.
한국사회에 조성된 온갖 사회적 부조리를 시정하려는 각종 평형운동이 자칫 과격한 형태를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하겠는데,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도 그 근원적인 해결방법이 오직 원리·원칙과 본질의 추구라는 원점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충언하고 싶은 것이다.
창간 6주년에 즈음하여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의 지속적인 본질에의 추구를 재확인하고, 독자와 더불어 새로운 도의문화 창조를 위한 주체성확립을 주장하는 소이는 바로 이러한데 그 근거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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