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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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미술과 더불어 수십 년을 지내는 동안 사립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분들과 적지 아니 접촉을 갖게 되었다. 그 중에는 견식이나 재력 또는 이미 이루어진, 방대한 수장품의 질량으로 보아 자신의 결심엔 따라서는 어렵지 않게 좋은 박물관 하나쯤 곧 실현시킬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분들도 몇 분인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분들일수록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나머지 좀처럼 결심에 도달하지 못하는 듯 싶었다.
그러니 요사이 그러한 분들 중에서 어떤 한 분이 어느 사이엔가 이미 박물관 집을 지어놓고 최신식의 진열장까지 마련해서 개관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것을 영구한 사회의 공기화 하기 위해서 재단을 설립하고자 막대한 액수의 기업주권을 내놓는다고 한다. 믿을만한 소식통에서 얻은 확실한 소식이므로 아마도 고 전모는 멀지 않아 세상에 발표될 것임이 분명하다. 비록 규모는 작다해도 고러한 사립박물관이 사회의 공기로서 실현된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학계의 우리들은 물론 일반사회에서나 문화재 관리당국에서도 마땅히 박수갈채를 보내야 될 것으로 안다.
이러한 소식에 곁들여서 또 하나의 낭보가 전해졌는데 그것은 국내 최대의 C「컬렉션」에서도 오랜 침묵을 깨고 이번 l0월 상달 미술「시즌」에 그 사설 진열관(이미 위정 때 이루어져 있었음)에서 소모품의 일부를 공개하는 특별전시회를 갖기 위하여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한다. 이 행사는 앞으로 정기적인 특별전시회로 마련됨으로써 학계와 국민 앞에 오랜 비장의 「베일」을 차례차례 벗어 보이려는 기획의 하나인줄 안다.
국내에서 가장 저명한 이 두 수장가의 이러한 사업의 전개는 오래 대망했던 바로서 우리 나라 수장가들도 이제 크건 작건 일종의 사명감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부실한 내용이나 겉치레로서 난립의 느낌이 없지 않은 일부 대학 박물관이란 것 중에는 박물관이란 간판이 낯간지러울 정도의 것이 행세를 하고 있는 판에 이들 실력파 개인 수장가들이 벌이는 이렇게 알찬 내용의 박물관 사업의 전개는 부실했던 대학박물관, 말하자면 대학 경영자측에서도 그들 학교 박물관 사업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줄 것이 분명하다.
원래 문화재 보존사업 내지 박물관 미술관 사업이란 국립이나 공립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 나라의 예로서 뿐만 아니라 선진제국에서 한층 절실하게 느껴지는 방대한 사업임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우리와 같은 발전도상의 국가가 국가문화재보존이나 국가박물관사업의 전반에 만족할 만큼 큰 투자를 서슴지 않는다는 일은 매우 힘에 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힘의 분담을 위해서 외국에는 무수한 사립미술관과 박물관이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오히려 개인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비중이 국가의 힘을 능가하고 있다. 이번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립박물관사업의 이야기에 대해 국가는 마땅히 행정력과 재정면으로 이를 성의껏 도와줄 만한 일이며 또 사립박물관이나 개인 수장가들은 국가의 힘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부담을 기꺼이 분담해서 민족문화재보전과 문화신장의 백년대계에 대거 참획하기를 비는 마음이다. 최순우<국립박물관미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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