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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북 근로자 "발전 없어 답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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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0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국회 외통위 의원들이 평양식당 북측 접대원들로부터 서빙을 받으며 기업인들과의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국감 기간 중 사상 처음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한 외통위 의원들은 공단 재가동 상황을 점검하고 입주기업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왼쪽부터 안홍준(새누리당) 외통위원장, 민주당 심재권·김성곤·박병석 의원. [개성=국회사진기자단]

개성공단을 대상으로 한 대한민국 국회의 사상 첫 국정감사였다. ‘현장방문’의 이름으로 진행됐지만 국감기간 중 최초의 방북이라는 점에서 여야는 그렇게 의미를 두고 있다.

 안홍준(새누리당)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 국회의원 21명이 개성으로 가기 위해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건 30일 오전 9시30분. 약 5분 뒤엔 북측통행검사소(CIQ)에 이르렀다. 북측 근무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의원들이 방문증명서를 제시하자 바로 통과시켰다. 국회의원 21명이 검사소를 지나는 데 역시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남에서 북으로 가는 게 그렇게 쉬웠다.

 오전 9시50분. 의원들이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그러나 탈북자 출신인 조명철 의원의 방문을 거부한 북한은 남측에서 국회의원이 21명이나 왔지만 손님맞이에 나서지 않았다. 우리 측 홍양호 개성공단관리위원장 등만 영접을 나왔을 뿐 북측 인사는 아무도 없었다.

 외통위원 일행은 홍 위원장에게서 현황 브리핑을 받았다. 그러곤 센터 1층 홍보관을 둘러봤다. 홍보관엔 공단에서 생산된 전기밥솥 등이 전시돼 있었다.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긴 의원이 있었다. “평화는 밥이다.” 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글의 주인이었다.

 외통위원 일행은 이어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재영솔루텍’과 의류업체 ‘신원’ 등 입주기업 4곳을 찾았다. 지난 4월 북측의 일방조치로 폐쇄됐다 지난달 16일 가동이 재개됐지만 기업인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했다. 통일부는 현재 공단 가동률을 80%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재영솔루텍 김학권 회장은 “바이어의 이탈로 (발표와 달리) 실질 가동률은 50%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외통위원들은 신원에선 박성철 회장과 함께 약식예배를 올렸다. 예배당으로 쓰이는 강당의 전면 벽엔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공단 관계자는 “북한이 반대했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박 회장이 ‘교회 없이는 공장을 못한다. 철수하겠다’고 버텨 허가를 받은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북한 근로자의 방문이나 예배는 허용되지 않는다.

 현지기업 방문 때는 북한 근로자와 외통위원들의 접촉이 이뤄졌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북한 근로자에게 “공단이 폐쇄됐을 때 내가 (정부에) 항의도 하고 그랬다”고 하자 “그래도 정상화된 게 어딥니까”라고 받았다고 한다.

 이 근로자는 “(공단이) 10년째 더 발전을 못하고 이러니 답답합니다”는 말도 했다고 우 의원은 전했다.

 낮 12시40분부터 송악프라자에서 20여 명의 업체 관계자와 의원들은 대동강 맥주를 놓고 오찬을 했다.

 안 위원장은 “공단을 둘러보면서 담소자약(談笑自若·위급한 상황에서도 평소처럼 웃고 이야기하는 태도)이란 말이 떠올랐다”고 건배사를 했다. 그러곤 “공단은 국가적으론 ‘남북 관계 최후의 보루’라고 불리지만 입주기업인과 근로자들에겐 ‘오늘의 점심 한 끼’와 같은 절실한 생존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더 이상 남북 관계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도록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대처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한재권 공단비대위원장은 “(의원들의 단체 방문이) 160여 일간의 장기 폐쇄로 피폐해진 저희들에게 큰 힘이 된다”면서도 “남북이 이미 합의한 사항들에 대한 논의의 진척이 없고 불확실성이 증가해 이탈했던 바이어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남북 간 이미 합의한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 등에 대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는 걸 가리킨 말이다. 그는 “남북 당국은 일괄 합의가 곤란하면 쉬운 것부터라도 단계적으로 하나씩 합의해 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식사 후엔 공단 내 소방서와 의료시설 등을 둘러봤다. 고(故)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은 한국전력 사무소에 걸린 남편의 과거 공단 방문 사진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남자”라며 감회에 젖었다.

 외통위원 일행은 약 7시간 만인 오후 4시10분쯤 귀환했다. 귀환 후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은 “겉으로 봐선 공장이 돌아가고 있지만 눈으로 봐도 바이어들이 끊어져 이전 가동률의 절반 이하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며 “빨리 개성공단을 국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남북 교역·북한에 대한 신규 투자 등을 불허하는) 5·24 조치를 풀고 국제화 단계로 접어들어야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정의화 의원도 “개성공단에 아직 빈 땅이 많아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은 있는데 5·24 조치로 인해 투자가 불가능하다”며 “이들에겐 5·24 조치에 예외를 두는 것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개성=국회공동취재단, 이영종·이윤석 기자

재구성해 본 첫 방북 국감
외통위 의원 21명 현장 방문
기업들 "실질 가동률 50%뿐"
여야 "공단 안정 운영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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