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딴집살림' 남편과 이혼 취소 소송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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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포토]

“이혼은 나쁜 게 아니란 것만 알아줘.”

<위기의 가족>을 연재한다고 했을 때, 한 연세 지긋한 선배가 조심스럽게 이렇게 전하더군요. 혹시 이혼이란 나쁜 것, 혹은 좋은 것이란 편견을 갖고 시작할까 노파심에서 전한 말입니다. 저 역시 매 사건을 접할 때마다 여러 생각에 빠집니다. 골백번 생각해도 남남으로 돌아서는 것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 이혼이란 필요한 이 시대의 제도가 아닐 까란 생각도 들고요.

이번 사건은 16년간 ‘두 집 살림’을 한 한 아버지의 이야깁니다. 이 두 가족에겐 지난 십여 년의 시간이 지옥이었을 겁니다. 차라리 ‘이혼’이 이들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용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각색합니다.

#아내의 이야기 “16년간 두 번의 외도, 이혼합시다!”

이리도 속 시원할 줄 알았다면. 이혼소송을 벌써 했을 텐데. “두 부부는 이혼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위자료로 2억 원을, 남편의 셋째 부인은 아내에게 1억 원을 지급하라.” 판사의 주문이 법정에 울려퍼지는 순간, 아내는 그제야 ‘후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지난 16년간, 한 번도 이혼소송을 해볼 생각을 못했다. 아니 안 했다. 바람 나 집을 떠난 남편. “내가 어디 이혼해주나 봐라.” 괘씸하기도 했다. 한창 크고 있는 아들을 아비 없는 자식으로 키울 순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제는 아들도 장성해 가정을 꾸렸고, 내가 못할 일이 없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내 가정을 깨고도 멀쩡히 ‘부부’로 살고 있는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두 번의 ‘혼인 취소’ 소송

꽃 같은 나이, 스물셋에 난 그와 결혼을 했다. 그의 나이 28살이었다. 결혼한 그해 아들을 낳았다. 남편에게 여러 여자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아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귀머거리로 살았다. 결혼 14년째던 어느 날. 아이의 입학 서류 때문에 동사무소에 갔다. 주민등록등본엔 그 사람과 내가 이혼한 것으로 돼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알아보니 ‘공시송달’로 인한 이혼이라고 했다. (※공시송달(公示送達) 이혼=이혼 소송 상대방의 주소나 직장을 알 수가 없는 경우, 일반적인 방법으로 소장 부본을 전달할 수 없을 때 당사자의 신청, 법원의 직권으로 이뤄짐. 법원사무관이 서류를 보관하거나, 관보, 공보, 신문에 게재하는 방식 등으로 공시를 해, 소송이 제기됐다는 것을 알림.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대로 재판이 진행 돼 이혼판결에 이를 수 있음) 나와 자식이 멀쩡히 살아있는데 “사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연락이 안 된다”며 법원에 공시송달 이혼신청을 했다니.

게다가 남편은 이혼 판결 후 다른 여자와 혼인 신고를 했다. 가슴이 무너졌다. 법원 앞 변호사 사무실에 무작정 찾아가 이혼 취소 소송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사람과 부부관계로 지내고 싶진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아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자 남편이 펄쩍 뛰었다. “너랑은 더 이상 못 산다”며 폭언을 했다. 그래도 버텼다.

‘작은 부인’의 간통신고

내가 소송을 하는 사이에도 남편의 바람기는 그치지 않았다. 작은 부인과 살림을 차려놓고도, 다른 여자를 만났다. 성이 날대로 난 두 번째 부인이 남편과, 세 번째 여자를 간통죄로 신고했다. 나와는 이혼 취소 소송을 하고, 두 번째 부인으로부터는 간통으로 고소당하고 이혼 소송을 당하게 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첩이 첩은 못 본다”고 하던가. 둘째 부인은 그렇게 남편과 이혼을 했고, 나는 법원으로부터 이혼무효 판결을 받았다.

세 번째 부인과의 혼인신고

법원 판결을 받고도 그는 셋째 부인과 또다시 살림을 차렸다. 보란 듯이 혼인신고까지 또 했다는 걸 알았을 때엔 울화병까지 생겼다. 변호사를 다시 찾아가 사정을 하소연했다. 그렇게 다시 그 남자와 세 번째 여자를 상대로 ‘혼인 취소 소송’을 냈다. 판결을 받기까지는 꼬박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남자로 인해 몇 년간 법정을 오가는 사이, 아들은 장성해 나이 서른을 넘겼다. 아들에게 결혼할 여자가 생기고, 아버지 없는 결혼식을 올리고 난 뒤 아내는 결심했다. 이제 이 질긴 악연을 매듭짓자고. 지난 16년간, 한 여자로서의 인생은 이만큼 끔찍했으면 됐다고.

#법원 “남편 2억, 셋째 부인은 1억 위자료 줘야”

조강지처(糟糠之妻)의 이혼 소송. 아내가 장성한 아들을 키우는 데 들어간 양육비와 위자료, 재산분할을 청구하자 남편은 펄쩍 뛰었다. “아내가 사이비 종교를 믿어서 제정신이 아니다”라며 법정에서 고함을 질렀다. “내 이름으로 생명보험에 가입해놓고, 사람을 붙여서 내 뒤를 미행한다.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며 없는 소리도 지어냈다.

긴 진흙탕 공방 끝. 서울가정법원은 판결을 내렸다. “중혼(重婚)으로 십여 년 이상 다른 집 살림을 유지해 혼인관계를 파탄 낸 결정적인 원인은 남편에게 있다”고 봤다. 법원은 “아내 측에 남편은 2억 원을, 셋째 부인은 1억 원을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뿐만 아니었다. 장성한 아들을 키우는 데 들어간 교육비 등의 양육비 조로 아내에게 34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남편은 “이미 아들이 장성했는데 무슨 양육비냐?”라고 반박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장래 양육비, 과거 양육비 청구권도 당사자 협의 또는 법원의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가 확정되기 전에는 소멸시효가 없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재산분할에 대해선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장기간 별거한 경우라면 별거 후 취득한 재산은 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남편 이름으로 된 부동산 회사의 지분 50% 청구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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