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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 속 긴장 4시간|대법원 판사 회의장 주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사법권 수호를 선언한 대법원 판사 회의는 2일 상오 11시10분부터 하오 3시10분까지 무려 4시간 동안이나 걸렸던 마라톤 회의였다. 회의가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민 대법원장은 김병화 법원 행정 처장 이병호 차장과 함께 지난 1일에 있었던 검찰 측의 제의에 대한 진의를 분석, 앞으로의 대책과 대법원 판사 회의에서 논의될 사항을 숙의했다.
이날 상오 10시50분에는 손동욱 수석 판사가 대법원장실에 들러 마지막 전략을 논의했고 이어 20분 후에는 대법원 판사들이 합의실에 전원 집합한 후 민 대법원장이 김병화 행정 처장과 함께 회의장에 들어섰다.
수위 3명이 회의장 문을 경비, 일체 접근을 막았으나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도 『이래서야…』『사법권 수호를 위해…』『젊은 판사들의 정의감…』이라는 등 판사들의 열띤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낮 12시20분쯤 인근 화식집에서 도시락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면서부터 회의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그후 10분 뒤 이영섭 판사가 화장실에 가려고 잠깐 나와 기자들에게 둘러싸였으나 『이것저것 이야기했다』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기도-.
이병호 차장이 회의장을 나와 비서관에게 『재경 3개 지방 법원장을 모두 오도록 연락하라』고 귓속말을 주고받은 것이 낮 12시35분쯤. 이 차장은 『여러분들이 알아서 써라』고 기자들의 질문을 피해 회의장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날 낮 12시50분쯤 점심식사가 끝나 도시락 그릇이 나왔는데 대부분 그대로 식사가 남아있어 사태의 심각성을 엿보게 했다. 하오 1시30분쯤 홍순엽 판사가 잠시 나와 자기 방에 들러 손과 솟아난 땀을 씻었는데 『사법권 수호를 위한 대책이 다른 각도로 논의되고 있다』고 말한 후 곧 다시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이날 하오 2시10분쯤 임기호 서울 민사 지법 원장을 선두로 송명관 서울 형사 지법 원장 강안희 서울 가정 법원장이 회의실로 들어가 사표를 낸 법관들이 지적한 검찰의 사법권 침해 사례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보고를 했다.
약 30분 동안에 걸친 각자의 보고가 끝나고 하오 2시40분 이들이 퇴장했는데 모두가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그 뒤 이병호 차장이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에 찾아와 대법원장 회견에서 질의할 사항이 무엇이냐면서 메모를 해간 후 이어 하오 3시10분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상기된 표정의 노 판사들이 땀을 씻으며 나왔다.
회의를 끝내고 나온 민 대법원장은 기자들이 모여 있는 대법원 판사 회의실로 직행-『여러분들이 대법원 판사 회의 결과를 궁금하게 생각할 것 같아 그 내용을 말씀드리겠다』면서 기자 회견을 시작했다.
민 원장의 표정은 지금까지의 웃음을 찾아 볼 수 없었고 약간 긴장된 모습이었다. 민 대법원장은 검찰에 의한 사법권 침해 문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건의 등 중요 대목에 대해서는 『유감된 처사라는데 의견을 모았다.』『대통령께서 협조해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는 등의 간접 표현으로 조심성을 보이기도 했다. 약 10분 동안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피상적이나마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답변한 민 대법원장은 모든 것을 털어놓은 듯 『자, 이제는 됐지』라면서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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