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③미·중공 해빙과 주변의 인력 3극의 인력 미·소·중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미·중공의 접근은 세계질서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전후 4반세기를 주름잡아온 미·소 양극체제가 삼극화 양상으로 전개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막 막을 열었을 뿐 양극시대의 잔해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것은 과도기적 병리와 새로움을 낳기 위한 진통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삼극화 작업의 전도에 놓여있는 장애를 그저 『과도기 특유의 현상』으로 보아 넘길 수는 없을 것 같다. 작업의 계기를 마련한 미국 측이나 반사적 이익을 노리는 중공, 그리고 모르는 사이에 『당했다』고 평가되고 있는 소련은 물론, 일본·서구 등 「미니·슈퍼파워」들의 이해관계가 칡넝쿨처럼 엉켜들기 때문이다,

<구·아 대륙에 세력권편중>
먼저 5대 영향권 분할론과 중공접근으로 이 작업의 「이니셔티브」를 잡은 미국 측의 의중이 문제다. 「닉슨」의 구상대로 하면 5개의 「힘의 중심지」중 4개, 3개의 극 가운데 2개가 구·아 대륙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이것을 다시 구도적으로 정립하면 소·중공이 대륙의 핵에 있으면서 그 외곽을 서구·일본의 『 「미니」형 힘의 중심지』가 포위하는 형상이 된다. 반면에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자신의 내해로 삼으면서 미주대륙을 독차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이장은 전혀 다르다. 즉 최근 소련의 「아시아」정책은 미·소 관계를 종으로, 중·소 관계를 횡으로 삼으면서 복잡한 궤적을 그려 왔다.
소련은 「아시아」를 미·소·중공 3대 세력의 각축장으로 간주하며 미·소 공존체재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미국에 대항하고 중공을 견제하려는 정책이었다.
예컨대 소련이 69년에 제안했던 집단안보구상은 「아시아」제국과 이에 관계가 있는 국가(미·소련 등)로 구성하자는 것이나 이의 구상 뒤에는 미국이 「닉슨·독트린」에 의해 아주에서 철수한 뒤 『나머지』를 소련이 차지하여 중공의 진출을 저지하자는 것이다. 즉 월남전이후의 미국후퇴, 소련진출, 중공진출의 저지라는 도식으로 「아시아」를 재편성하여 새로운 미·소 체제를 이룩하자는 뜻으로 해석됐던 것이다.
한편 중공은 「닉슨」초청과 함께 새로운 「제네바」회담의 삼가와 아울러 「프랑스」에 사절단을 파견, 영국과의 외교관계를 대사급으로 격상하겠다는 등 열강으로서의 진출을 노린 외교 공세를 벌이고 있다. 중공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외교를 벌이게 된 것은 문화혁명을 수습하여 내치가 안정됐다는 점과 「캐나다」등과 국교를 수립하는 등 국제정세가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있다.
이러한 내외의 유리한 정세를 배경으로 중공이 미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접근하게 된 직접적 요인으로는 「닉슨·독트린」에 의한 미군의 월남 철수 등 아주에서의 개입축소 전망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중공으로서는 미국의 「아시아」로부터의 후퇴에 따른 사후대책이 문제가 된다.
종래 미·소에 의한 봉쇄정책에 묶여 있던 중공으로서는 최근 인도양으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소련의 해군력과 동남아제국에 대한 소련의 외교공세에 의한 『포위형태』에 불안을 느꼈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즉 소련은 말레이지아·필리핀·태국 등 동남아의 반공 국가에 대해 통상협정·국교수립의 의사를 표명해오는 한편 69년에는 「아시아」집단안보구상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 공세를 펴왔다.

<중공, 힘 아닌 협상필요 인식>
중공으로서는 미·소 양국의 세계지배를 타파하는 것이 전략목표이며 이것을 이루는데는 무력대결이 아닌 교섭에 의한 대결, 즉 국제정치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인식, 미국과의 「화해」 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중·소 대립을 이용한다는 정책은 「닉슨」행정부에서 예외일수가 없다.
49년 국부가 본토에서 밀려난 뒤 당시의 「애치슨」국무장관은 『중국의 상실』이라는 여론에 대해 『중국이 일시적으로 적화되더라도 「러시아」 제국주의와의 역사적인 대립관계는 되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했듯이 중·소 대립 이용은 미국의 아주 외교의 『전통적인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소련의 일련의 안보구상 등 평화제의에 의한 「브레즈네프」외교는 이번 「닉슨」대통령의 『기습적인 외교』에 수정을 면치 못하게 됐다. 소련이 받은 충격과 당혹은 모두 기관이 7시간 반만의 침묵 끝에 「닉슨」의 방문 초청사실만을 간단하게 보도한 사실만으로도 추측할 수 있다. 소련은 미·중공의 접근을 미국에 의한 중공이용이라고 비난해 왔다. 미·소의 『밀월』에 의한 세계지배에 미련을 갖고있는 소련으로서도 이제부터는 중공과 함께 미국의 평화공존노선에 경쟁하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월남전에 대한 소련의 중재자로서의 권위도 퇴색하여 오히려 소련을 제쳐놓고 미국과 중공이 담판할지도 모를 궁지에 몰렸다.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미·중공 접근에 따라 서구를 비롯, 일본 등이 미국의 뒤를 이을 것은 뚜렷해져 소련의 중공견제노력은 공전하게 된 셈이다.
소련으로서는 이런 사태에 부딪쳐 미국과의 협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SALT·중동문제·「베를린」문제 등에 대해 중공과의 경쟁적 입장에서 한결 더 유연한 태도를 보여야할 형편에 놓여있다. 뿐만 아니라 중공이 적어도 대미관계에서 소련과 대등한 위치로 부상했으므로 중공정책에 대한 전환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삼극구조는 오권화의 도정>
한편 소련의 급속한 정책 전환은 동구 「블록」을 의식한다면 일정한 한계에 부딪칠 것이 예상된다.
미·중공 접근에 따른 화해 「무드」는 반소·중간적 세력을 대두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동구권에 관한 한 오히려 『자세』가 경화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중공접근에 따른 미·중공·소에 의한 세계질서 삼분화란 가설은 일련의 예측키 어려운 연쇄반응을 일으킬 공산이며 경제적으로 오히려 중공을 능가하고 있는 일본과 서구를 염두에 둘 때 삼극 구조는 이들 경제대국을 포함한 동원적 평화질서로 통하는 도정이라 할 것이다.<김동수·홍사덕 기자>

<차례>①제1 주역 키신저 외교 구도
②제2 주역-주은래 외교
③삼극의 인력-미·소·중공
④일본의 방향모색
⑤파문의 주변
⑥구주 긴장완화와 독일-미·중공 접근과 한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