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람하는 연예인의 사대풍-연협 정화수동을 계기로 본 그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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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연예협회는 15일 이제까지의 퇴폐적이고 무질서한 연예활동을 일소하고 법질서 준수와 사회정화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연예협회의 결의내용을 보면 유흥장에서의 신고 없는 공연행위를 제한하고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광란한 음악을 일소한다는 것 등으로 되어있다. 우리 나라 연예계의 이상기류는 늘 빈축을 받아왔고 이러한 이상기류에 새바람을 일으키자는 「캠페인」도 자주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무런 성과 없이 사라져버려 이번 연예협회의 결의에도 커다란 기대를 걸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번 결의가 공연장분위기정화에 국한돼 있는 점은 연예인들이 근본적인 연예계정화를 외면하고 국부적 상황에만 치우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연예계를 정화하는데 있어서의 근본적인 문젯점은 무엇인가.
우리 나라 연예계는 오래 전부터 외래풍조에 의해 쉽사리 좌우돼왔다. 가깝게는 일본으로부터, 멀리는 미국까지 그네들의 유행은 지나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우리 연예계를 휩쓸곤 했다. 외국유행의 도입은 비연예적인 요소까지 수반하여 이를테면 장발이라든가 「히피」차림 따위의 퇴폐적인 스타일이 연예의 대명사처럼 뒤따랐다.
이것은 우리 나라 연예에 전통이 없다는데 그 이유가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연예인들의 정신자세인 것이다. 예를 들어 가요의 경우만 해도 무작정 외국의 유행을 본뜬 국적불명의 가요가 자주 횡행하곤 한다.
한때 서구서 「비틀즈」가 선풍적인 인기를 몰 때도 우리 나라에서도 「비틀즈·스타일」의 장발이 대유행이더니 최근엔 「사이키델릭·사운드」의 유입과 함께 「히피·스타일」이 「붐」을 이루었다. 장발이 단속의 대상이 될만큼 사회적인 문젯점으로 등장한 것은 연예계에서 무분별하게 외국 유행을 도입한 결과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는 갖는가를 예견할 수 있다.
외국유행항의 도입을 반드시 나쁘다고는 볼 수 없겠으나 의식구조가 우리와는 엄청나게 차이가 있는 그네들의 유행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심대한 것이다.
최근 개봉돼 물의를 일으켰던 『소녀의 첫 사랑』은 외국유향의 무분별한 도입의 한 예가 된다.
「방갈로·섹스」니 「샤워·섹스」니 하는 귀에 선 단어들은 차라리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할 정도.
요즘 한창 「붐」을 이루고 있는 「보컬·그룹」만 해도 야단스러운 몸짓, 장발, 기괴한 옷치장 따위가 그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데 그 까닭 역시 외국대중문화의 무분별한 도입 때문이다.
결국 연예계의 정화는 공연장질서확립 따위로 이루어질 수 있는게 아니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연예인 각자의 책임의식이 발동하지 않으면 정화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얼마 전 부산의 어떤 극장에서 「쇼」공연 중 두 여가수가 인기다툼에서 비롯된 출연순서시비로 무대를 어지럽게 했던 일.
소위 일류 작곡가라는 사람들이 부산·포항 등지로 출장(?)가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일본유행음악을 베껴 자기 작품으로 발표하는 일. 연예인들이 조금만 인기를 얻으면 「스캔들」만 뿌리고 다니며 방송출연스케줄을 밥먹듯이 어기는 일…따위는 우리 나라 연예계정화에 가장 역행하는 요소들이다.
공연질서확립은 외부적인 정화지만 보다 중요한 내부적 정화는 이러한 요소를 제거하는 일일 것이다.
윤문공 장관이 취임직후 연예계의 불건전한 풍토개선에 큰 관심을 보여 이번 연예협회의 결의는 오비이락의 냄새가 짙기는 하지만 이왕 결의한 것일 바엔 결의자체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세로 외부적정화는 물론 내부적 정화에도 앞장서야할 것이다. <정규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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