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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는 유튜브에 KO패한 걸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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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호 27면

음반의 역사가 끝나가고 있다. SP와 LP, CD를 거쳐 이제 디지털 파일로 음악을 듣는다. 명연주 LP재킷들. 이 음원들도 현재는 디지털화돼 있다. 최정동 기자

바로 며칠 전인 10월 23일, 이곳 일본에서 나의 새 음반이 발표됐다. 그래서 연주회가 끝나고도 며칠간 여기 머무르면서 홍보 일정 등을 소화하기로 했다. 새 음반을 받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음반을 만들어낸 주인공 중 한 명으로서의 소감만은 아니다. 문득 기억이 난다. 내가 대학생이던 2000년대 초반, 가수들이 이제는 너도 나도 ‘미니 앨범’이라는 걸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그게 뭐지? CD 크기를 더 작게 만드는 건가?’ 하고 생각했던 게. 그로부터 몇 년 후 친한 작곡과 출신 언니로부터 “클래식 음악가들도 ‘싱글 앨범’ 한번 만들어서 발표해보지 그래? 음반 한 장 내는 거에 비하면 그건 일도 아닌데” 하는 얘기를 들었다. 싱글 앨범? 그건 또 뭐야? 그건 글자 그대로 곡 하나가 완성되면 그대로 발매해버리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며칠 전, 오랜만에 한국에서 TV를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요즈음 내가 길거리나 카페에서 듣게 되는 음악이 대부분 ‘디지털 싱글’이라는 것. 즉 인터넷 등 온라인에서 바로 풀어버린 음악이라는 것이었다. 몇 년 전의 내가, 더 작거나 얇게 만드는 건가? 하고 착각했던 그 물건, 콤팩트 디스크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음반의 종말<상>

확실히 CD는 죽었다. 산증인이 바로 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내가 가장 뻔질나게 드나들던 두 곳이 바로 예술의전당 내 예술자료관과 콘서트홀 안에 위치한 음반 가게였다. 예술자료관에 없는 음반은 음반 가게에서, 음반 가게에 없는 음반은 예술자료관에서 찾던 그때의 내가 바로 음반광이었다. 돈만 생기면 음반 가게로 제일 먼저 달려가던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한 달에 열댓 장에서 스무 장 정도의 CD를 샀다. 물론 ‘특별한 일’이 있으면 더 샀다는 얘기다. 콩쿠르나 연주회로 몇 주간 외국에 나가야 할 때는 일주일 전부터 고민에 빠졌다. 어떤 CD들을 가져가지? 열흘 후 밤 11시에 내 감정이 어떨지, 내가 어떤 음악을 제일 그리워할지, 어떤 음악이 나를 제일 달래줄지 낸들 어찌 알리오. 해서 이것저것, 되도록 성악, 기악, 실내악, 교향곡 등의 균형을 맞춰가며 성심성의껏 서른 개 남짓을 추려 내가 가장 아끼는 CD케이스 몇 개에 집어넣어 가도 어떤 하루는 꼭 가져오지 않은 CD 한 장이 죽어도 듣고 싶으니까 말이다.

손열음씨는 일본의 청각장애 작곡가 사무라고치(오른쪽)의 피아노 소나타 1, 2번을 녹음해 일본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발매했다. [중앙포토]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MP3라는 혁명 덕에 이제 더 이상 맘 아프게 CD를 추려내는 일도, CD들이 내 짐가방의 반을 차지하는 일도 없어졌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진짜 변화는 감지하지 못했다. 나는 다만 가지고 있던 CD들을 모두 파일로 변환해 MP3플레이어에 넣어 들었을 뿐이고, 새로 산 CD는 오디오에 넣기 전 먼저 컴퓨터에 집어넣어 파일로 변환하는 작업을 한 번 거칠 뿐이었다. 게다가 나처럼 음반에 환장하는 지인들의 CD까지 몽땅 빌려다 내 컴퓨터에 집어넣고 나니 내 컬렉션은 오히려 더 커졌다. 그게 불과 서너 해 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꾸준히 하노버 시내 서점의 음반 코너에 들러 신보를 확인하던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산 CD는… 기억이 없다. 두 달 전 괴팅겐에 갔을 때 꽤나 좋은 음반을 많이 구비한 음반 가게에서 습관처럼 한참 동안 둘러보고 대여섯 장을 뽑아들었다가 결국 빈손으로 가게를 나선 기억은 있다. 3, 4년 동안 내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물론 유튜브가 생겼다. 생긴 건 몇 년 더 전의 일이지만 우리 삶 속으로 이토록 파고든 건 채 몇 년 되지 않은 것 같다. 10대 시절 내가 환장하던 20세기의 전설들, 코르토·호로비츠·분덜리히·번스타인·솔티 등은 한동안 살아 있는 음악가들보다 더 자주 신보를 발표하곤 했는데 분덜리히나 번스타인처럼 레퍼토리가 산더미인 아티스트라면 몰라도 호로비츠처럼 분명 그 범위가 제한적인 아티스트마저 지금껏 발표되지 않은 곡을 딱 두어 곡 추가해 리마스터링 후 재발매하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그 모두에 속속 지갑을 열던 나 같은 충성스러운 고객들이 어느덧 이제는 거의 모든 레퍼토리를 구비하게 되기도 한 동시에 빠진 한두 곡은 용케도 유튜브가 다 가지고 있다! 유튜브 조회수가 채 100도 안 되는 그런 희귀 음원들은 혹시 지난날 음반사의 횡포에 기쁘게 먹이가 돼주던 이들이 복수심에 올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튜브와 클래식 음악. 거리가 영 멀어 보이지만 나처럼 20세기 초·중반의 거장들에게 특히 목매던 사람에게는 사실 더 바랄게 없는 매체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20세기의 거장을 한 명이라도 더 찾고 싶어 이것저것 뒤져 이름과 약력을 발견한 10대의 나. 그 사람의 음반까지 찾았다면 무조건 사고 봤다. 그게 한 장에 3만원이나 하는 중고든, 10장짜리 박스세트이든. 지금은? 유튜브에 제일 먼저 쳐본다. 열이면 열 다 내 취향에 맞는 연주일 리? 만무하다. 내 취향이 아니면 거기서 끝인 거고, 너무너무 좋다면? CD를 한번 찾아나서 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꼭 실행에 옮겨지는 건 아니다. 그런 숨은 거장들의 음반은 대부분 지금은 없어진 음반사에서 발매됐고 운 좋게 저작권이 어딘가로 잘 넘어갔다 한들 전 세계에서 찾는 사람이 100명도 안 되니 누군가와 저작권 시비가 붙어 ‘링크가 잘릴’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일단 유튜브에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CD가 유튜브에 KO패한 것만 같다. 그런가? 그건 아닐 텐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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