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달라지는 영화 관객 취향|상반기 개봉 방·외화를 중심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영화 산업의 사양화는 60년대 후반기부터 기정 사실화 하여 왔다.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우리 나라만 해도 매년 5백만 내지 1천만명씩 영화 관람자가 줄어들고 있으며 이에 따라 영화 제작은 큰 모험이나 도박 같은 「위험한 사업」으로 간주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나라의 연평균 영화 관객 수는 1억5천만명 내외. 이것은 국민 한 사람이 매년 5편 정도의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는 증거로서 영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아직도 절망할 단계는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사실 영화 산업의 사양화에 대한 외부적 요인은 「텔리비젼」과 「레저·붐」이지만 영화내부로서의 문제를 들춰보면 방향 전환을 모색하지 않은 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금년도 상반기 방화의 공연 실적은 이러한 원인을 그대로 반증하고 있다. 69년에 5만명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46편, 70년에 22편이던 것이 금년에는 (아직 하반기가 남아 있지만) 11편. 하반기에 개봉될 영화 가운데 특별히 화제가 될 만한 영화가 없다는 중론을 감안하면 금년의 방화계는 최악의 불황인 셈이다.
대체로 개봉관에서 5만명의 관객 동원을 흑자 선으로 보는데 그렇다면 61편의 개봉 영화 가운데 약 50편이 적자를 면치 못했다는 얘기.
이것은 곧 영화 제작가가 대중의 영화 취향을 외면했다는 증거일 수밖에 없다.
60년대에 접어들면서 방화계는 문예의 전성기였다. 문예물이 차츰 퇴조를 보이면서 새로 대중의 구미에 맞춘 것이 「멜러·드라머」. 『미워도 다시 한번』「시리즈」의 연속 「히트」는 우리 나라 영화계에 새로운 기원을 이룩했다.
그러나 근년에 이르러 대중의 영화 취향은 뚜렷한 양상을 보이지 않은 채 작품 하나 하나의 질에 편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굳이 취향의 단면을 꺼집어내자면 「특이한 소재의 특이한 연기」.
70년엔 2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한편도 없었는데도 금년에 접어들어 23만명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화녀』 (김기영 감독·윤여정·남궁원·전계현 주연)는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실상 이 작품은 이미 10년 전에 『하녀』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작품. 이것이 다소의 손질을 거쳐 불황의 방화계에 활력소 구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연출자의 특이한 연출 기법과 신인 윤여정의 독특한 연기가 큰 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화녀』를 제외하면 금년도 상반기 방화들은 모두가 고전이었다. 2위의 『내일의 팔도 강산』(15만명·문공부 제작) 3위의 『미워도 다시 한번』4편 (14만명·정소영 제작·감독)이 제나름의 배경으로 10만명 선을 돌파했을 뿐,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영화 (5만명 이상) 들이 고작 7, 8편뿐이었다. 특히 「국내 최초의 70mm」라는 「서브·타이틀」을 내건 『춘향전』 (이성구 감독·문희·신성일 주연), 원작의 인기로 대대적인 「히트」가 예상되던 『분례기』 (유현목 감독·윤정희·허장강 주연)가 8, 9만명 선에서 머무른 것은 방화계에 큰 충격까지 안겨주었다.
결국 사극·문예물·「멜러」물 등 방화 제작 방향의 삼총사도 이제는 맥을 추지 못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관객 취향은 외화 쪽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상반기 외화 수입 「코터」배정이 늦어져 외화 상영이 활발치 못한데도 그 원인이 있었겠지만 상반기 외화관도 대단한 실적은 올리지 못했다. 「코터」배정이 끝남으로써 6월 하순부터 『도라·도라·도라』『패튼』『졸업』등 문제 외화들이 개봉되어 상황이 좀 달라지겠지만 6개월 동안 제일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솔저·블루』로서 고작 15만명.
인간의 잔혹한 면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물론 내용이나 「스케일」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화녀』와 비교되는 『솔저·블루』는 애정물이나 정통 서부극 따위에 식상한 외화 「펜」에게는 안성마춤의 외화.
『007 「카지노·로열」』『1천일의 「앤」』등 「드릴러」와 문제 영화들이 『솔저·블루』에 축 처져 7, 8위를 기록한 것은 이러한 관객 취향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다만 「마릴린·몬로」주연의 『돌아오지 않는 강』, 「제임즈·딘」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등 「리바이벌」영화가 15만명에 가까운 관객 동원으로 2, 3위를 차지한 것은 영화「팬」의 복고 취향에 힘입은 것.
결국 상반기 영화 관객 숫자가 주는 교훈은 『관객 취향의 커다란 변화』일 것이다. 안이한 제작 태도로써 이제는 완전히 달라져버린 대중 취향에 영합하려 한다면 결과는 『텅 빈 객석』 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규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