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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음악만 보고 달린 인생, 드러머 주찬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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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잘 가시오 친구여-. 22일 오전 서울 현대아산병원에서 열린 들국화 드러머 주찬권 발인제에서 전인권(오른쪽)이 고인의 영정을 지켜보고 있다. [뉴스1]

지난 20일 갑자기 세상을 떠난 록그룹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58)의 빈소를 찾은 이들은 처음엔 침울했다. 전인권(보컬)도, 최성원(베이스)도 무어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극단 학전의 김민기 대표, 김정환 시인, 신촌블루스 엄인호, 백두산의 유현상, 소설가 박민규 등도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수많은 후배들이 왔다 가고, 술이 도는 사이에 분위기는 조금씩 풀려갔다. 21일 자정을 향하던 시간, 거나하게 취한 최성원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래, 로커는 그렇게 죽어야지! 입원해서 앓다 죽는 것보다, 병명이 뚜렷한 것보다, 이렇게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가는 게 로커답지!”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무대에서 그토록 힘이 넘치던 주찬권에게 벼락같이 죽음이 찾아올 줄은. 다만 1987년 들국화 해체 이후에도 꾸준히 음악인의 길을 걸었고, 그래서 음악 바깥의 삶이 고달팠다는 건 어렴풋이 알 뿐이었다.

 들국화 하면 흔히 떠오르는 건 전인권의 터질 듯한 보컬에 최성원의 탁월한 곡이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서 균형을 잡아준 건 록의 정신으로 충만한 주찬권의 드럼이었다.

 주찬권은 지난해 솔로 6집 ‘지금, 여기’를 발표했다. 그는 들국화 원년 멤버들 중 가장 많은 솔로 음반을 내놓은 뮤지션이다. 작사·작곡·편곡은 물론 노래에 기타부터 드럼 등 모든 연주까지 혼자 해냈다. 하지만 들국화가 아닌 주찬권의 솔로 앨범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가 신촌블루스 엄인호, 사랑과평화 최이철과 함께 2010년 발표한 앨범 ‘슈퍼 세션’이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을 받은 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주찬권이 한창 생활고에 시달리던 1990년대 중반, 룸살롱에서 취객을 상대로 반주하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들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최저생계비 벌기도 힘들다는 말을 허허 웃으며 했다.

 “벌려면 벌었겠지만 그 길로 가지 않았다. 나는 인생에서 돈을 맨 앞에 두지 않았다. (…)돈 때문에 음악 할 시간을 뺏기지 않았음 좋겠다.”(중앙일보 2012년 7월 7일자 들국화 재결성 기념 인터뷰)

 22일 영결식에서 동료들은 눈물로 그를 보냈다. 주찬권의 6집 수록곡을 다시 들어본다. 고인이 노래한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많고 많은 사람들/보이는 건 다르지만 (…) 들어가보면 거기서 거기 생각하기 나름이야/잃기도 하고 얻기도 하네/한번 가면 그만인데, 좋은 시간 가져”(‘거기서 거기’)

 한번 가면 그만인 인생, 그토록 좋아하는 음악에 매진하다 저 세상으로 건너간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음악이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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