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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 은신 24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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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당수 유진산씨로 인한 신민당의 파동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해가던 6일, 유당수는 약혼식을 위해 5일 도일한 막내아들 한열군의 숙소인 한남「아파트」 507호실에 은거하고 있었다.
7일 새벽 5시 조금 지나 비서 한사람만 데리고 이곳에 온 유당수는 사태진전을 지켜보며 수습의 방안을 찾고있었다.
전날 밤 양일동 운영위 부의장에게 『내일 상오 10시 간부회의를 열라』고 지시했던 그는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행방을 비밀에 붙인 채 당 간부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양부의장에게 전했다.
서한의 골자는 ①전국구를 결심한 것은 4일 밤 「그랜트·호텔」이 회담을 마치고 귀가해서의 일이다. ②어쨌든 오늘의 사태는 내가 지역구를 포기한데에 원인이 있다. ③당과 국민 앞에 적절한 책임을 지겠으나 혼란을 수습하고 나서 거취를 정하겠다. ④나의 인책은 탈당하고 정계에서 은퇴하는 것, 당수직을 사퇴하는 것, 전국구출마를 사퇴함으로써 국회진출을 포기하는 것 등의 방법이 있으나 구체적인 결정은 당 간부들과 협의해서 하겠다는 것 등-.
이 편지는 양부의장이 대표위원실에서 탈당을 강요받고있어 전달치 못하다가 연금에서 풀려난 11시가 넘어 전달됐고 곧 일부 간부들에게 그 취지가 전해졌으나 그런 미온적인 태도로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사태는 계속 악화해가고 있었다.
8일 새벽 기자와 만난 그는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전국구를 판돈을 갖고 외국으로 도망쳤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는 얘기가 들렸을 때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당수가 밤새도록 시달리다가 아무도 안 만나고 좀 쉬려고 아들집에 가 있은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그는 언성을 높였다.
동교동 김대중씨 댁에서의 간부회의에 따라 당사에서 그를 제명키 위한 운영회의가 열릴 무렵인 하오 6시, 견지동 제2당사로부터 달려간 신동준 비서실장으로부터 정세보고를 들은 유당수는 비서 3명의 부축을 받으며 「아파트」를 나서 신실장 승용차인 서울자2-5175호 「코로나」에 깊숙이 앉아 상도동자택으로 옮겨왔다.
자택에 옮겨 앉은 유당수는 『어떻게든지 총선을 잘 치러야 할텐데…지역구 출마자들에게 자금도 넉넉히 내려보내야겠고…. 당이 이 꼴이니 누가 돈을 대줄까…』는 등 「제명결의」같은 것과는 아랑곳없는 뱃심을 보였다. 운영회의가 양일동씨 지지청년들 때문에 풍비박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그는 다시 한잠 자야겠다고 누웠다.
7일 밤 「상도동」엔 당직자들의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몇 사람은 전화로만 얘기를 나누었다. 밤 9시 지나 신도환씨가 운영회의 전말을 보고하고 나간데 이어 양일동씨가 l시간 넘어 구수회담을 갖고 11시가 넘어 돌아갔다.
8일 아침 이철승씨와 김수한 대변인, 김준섭씨, 영등포갑구 당 공천자인 박정훈씨가 들어섰다.
평소 출입기자들에게 좀처럼 시간을 안내 주던 유당수는 『그렇잖아도 오늘은 기자동지 여러분을 좀 만나고 싶었소』하고 말문을 열어 1시간 가량 격앙된 어조로 자신의 심경과 그간의 경위를 털어놨다.
-지금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국민과 당과 특히 전국1백53개 지역 출마자들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하다. 어떻게든 혼란을 수습하여 총선을 차질 없이 치르도록 하겠다.
나는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고 이미 밝힌바있다. 그러나 엉뚱하게 나에게 누명을 씌우고 당권이나 차지하려는 이런 작풍은 곤란하다.
당이 있고 당권이 있지, 당을 망쳐놓으면 당권이 무슨 소용 있는가.
남에게 누명이나 씌워 야망을 성취하려는 자들을 끝까지 규명하고 나서 나의 거취를 정하겠다.』 (누가 누명을 씌웠다고는 지적하지 않았으나 당내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명백했다.)
-항간엔 유당수의 갑작스런 지역구포기에 잡음이 많은 것 같은데….
『오비이락이란 말도 있지만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다. 그래 명색이 당수고 70평생을 나라와 명예만을 생각하고 싸워 온 내가 억만금을 준다해도 거기에 넘어가겠는가. 상말로 미친개 눈에는 무엇 밖에 안 보인다더니 돈을 받았다, 팔아먹었다, 「사꾸라」다-.
이래서 나라가 되겠는가. 더욱이 돈을 갖고 외국으로 뛴다는 등…. 좋은 머리를 짜내 모략중상이나 하니….
7순이 다된 사람이 젊은 사람(김대중씨를 지청)을 앞세워 분골쇄신 싸우면서 당락간에 당같은 당하나 만들어 놓고 정계에서 물러나려고 했었다.
6일 전국구 등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항의하는 당원들 틈에 김대중군의 비서 이윤수등 10여명이 끼여있더군.』
-전국구출마를 결심하게 된 동기와 시기는?
『김대중의원과 양일동씨가 수차 나에게 권유했으나 상대가 막대한 금력과 권력을 가진 세도등등한 사람이니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모든 준비를 해왔었다.
그런데 지난 1일 지역구 출마자들이 공천장을 받아 가지고 내려가면서 당수가 유세지원도 해주어야하지 않느냐면서 애소하는걸 보니 마음이 동요됐다.
또 대통령선거에 지난달 22∼23일부터 전국구예정자 6, 7명으로부터 2억원 가량을 미리 받아썼고, 이번에 김홍일 김의택 홍익표씨등은 선거 끝날 때까지 전액을 낸다는 양해아래 포함시킨 것 등 전국구 헌금사정도 좋지 않다. 그러니 아무래도 내가 좀 더 자유로운 입장에서 활동을 해야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지난 4일 「그랜드·호텔」모임을 끝내고 그날 밤 결심했다. 이튿날 아침 박세경씨를 불러 그분의 아들인 정훈군을 지역구 후계자로 결정했다. 박군은 6·3세력 중 똑똑하고 부친의 위력 등 가장 조건이 좋은 사람이다.
박군은 당 조직과 젊은 사람들을 동원하면 장덕진씨와 싸우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다. 시기가 늦었지만 불가피했다.
나는 그렇게 거짓말이나 했다가 홀랑 뒤집는 사기꾼을 제일 싫어한다. 여러분들 중 내 성격을 아는 사람이 있겠지만….』
-구체적인 수습책은 무엇인가.
『이번에 전국구에 들어가기로 한 결정이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것은 시인한다. 그러나 지구당(영등포갑)이 잘못된 것을 감독·지시·지도해야 할 중앙당이 법도 도의심도 없는 장난질 같은 짓을 하고있다고 생각하니 국민 앞에 죄송하다. 어제의 간부회의는 「6인위」가 아니다. 첫째 나를 도망칠 사람으로 간주해놓고 둘째 양부의장을 폭력과 난동으로 감금해놓고 탈당을 강요했다. 운영회의도 엉터리다. 내가 없을 때 양부의장에게 권한대행을 시키도록 전에 분명히 해두었었다.
이런 장난질하는 풍토부터 바로잡혀야 한다. 당을 죽여서는 안된다. 그리고 어쨌든 선거를 치러야한다.』 <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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