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안개 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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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왕조 최후의 황태자,
당신의 이름은 은.
어려서부터 영민하다 해서 영친왕이라 했소.
당신은 정유생,
나는 신축생,
당신은 나보다 4년이 위였소.
그리하여 나는 당신의 한평생을 잘 알고 있소.
슬퍼라, 당신은 왜 나라망치는 제왕의 아들이 되어
그 슬기, 그 천품을 다 써보지 못하고
악마의 거미줄에 칭칭 감겨서
인질의 몸으로 한평생을 마치었소?
나는 당신을 빗대서
『다정불심』을 썼소
원나라의 볼모가 되었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함흥, 영흥, 국토를 회복한 고려의 공민왕,
일제의 방자 여왕을 노국공주에 비해서
우리 나라를 다시 찾으라고
장편 소설을 썼던 것이요.
일본의 총·칼 밑에서
우리의「얼」을 잊지 말자는 것이었지오.
그러나 당신은 몰랐으리다.
뻐꾹새 울음소리에
당신은 망국한을 가슴에 안고
얼마나 울었소.
무궁 무진 피눈물을 흘렸으리다.
영영 고국 땅으로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던 당신
광복된 덕분에
다행히 고궁으로 돌아왔구려
그러나, 아아 어찌하리.
정신 잃은 반신불수의 몸이 되어
장장 7년 긴긴 세월에
말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네.
천만겹 서린 원한은 몸을 싸안았으리.
아아, 왜, 당신.
망국지주의 세자로 태어났소
천추에 뻗친 유한.
금곡능상에
구름과 안개 되어
감돌고 있네.

<1971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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