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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cm 간격 쇠꼬챙이 철판이…" 中어선 단속현장 가보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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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16일 오후 3시 전남 신안군 홍도 인근 해상.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3000t급 3009함 선내 스피커를 통해 명령이 떨어졌다.

“전원 검문 준비 바람!” 우리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을 검문·검색하기 위한 출동 대기 명령이다. “키 오른편 5도, 220도 잡아!” 3009함은 뱃머리를 중국 어선이 있는 홍도 서남쪽 25마일 해상 쪽으로 틀었다. 배에 탑승한 기동대와 특공대원 16명은 실탄이 장전된 K5 권총, 스펀지 고무탄이 발사되는 다목적 발사기, 진압봉·섬광폭음탄·최루탄·전자충격총 등으로 중무장을 마쳤다.

“중국 선원과 우리 측 인명 피해를 방지하는 것은 물론, 최대한 빨리 승선해 불법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대원들은 부함장의 지시가 끝나기 무섭게 갑판 양 옆 밧줄에 매달린 고속단정으로 이동했다.

오후 4시30분. 함정 5km 전방에 중국 어선들이 희미한 모습을 드러냈다. “정선(停船) 신호 보내!” 함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뿌~웅” 고막을 찢을 듯 커다란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이후로도 신호음은 2번이나 더 울렸지만 어선들은 정지하지 않고 중국 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아났다.

3009함과 함께 작전에 나선 1500t급 1508함은 카모프 헬리콥터를 긴급 발진시켰다. 중국 어선 상공을 맴돌던 카모프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하강풍을 쏟아냈다. 출동 명령만 기다리던 기동대와 특공대원들도 고속단정을 타고 전속력 돌진했다.

어선들은 혼란에 빠진 채 이리저리 흩어졌다. 하지만 출동한 대원들은 좀처럼 승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높이 1.5m 넓이 70cm 가량의 철판이 촘촘히 어선 양측에 설치됐기 때문이다. 10척의 중국 어선에 달린 철판은 크기와 모양, 색깔까지 모두 같았다. 특공대 승선 방해 목적으로 중국 선원들이 설치한 것이다. 철판 위에는 30cm 간격으로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꽂혀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조선 판옥선 양 옆에 철판을 대고 왜군이 올라타지 못하도록 쇠못을 박은 모습과 흡사했다. 이런 방어책도 모자라 일부 선원들은 승선을 시도하는 대원들에게 돌멩이를 던지거나 식칼을 들고 위협까지 했다. 특공대 경력 3년차 목포해경 박명선 경위는 “지난해 연말 쯤 인천 인근 해역에서 철판을 두른 선박이 나왔다는 말은 들었는데 1년도 못돼 쇠꼬챙이까지 용접한 업그레이드 버전이 나왔다”며 “중국 불법 어선의 단속 방해가 갈수록 지능적이고 흉폭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공대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카모프가 다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갑판 위에 연막탄을 쏘고 하강풍을 더욱 강하게 내려 보냈다. 거센 바람에 철판 장애물이 하나 둘 넘어지기 시작했다. 고속단정 위의 대원들은 이 틈을 노려 승선, 순식간에 선원들을 제압했다. 해경은 이날 6척의 어선을 나포했다. 나포 어선 전체가 무허가로 우리 측 EEZ에서 조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주하던 어선 10척 중 6척을 나포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1508함에서 고속단정을 타고 출동한 한우기(28) 순경이 승선 도중 왼팔 골절상을 입은 것이다. 한 순경은 위험을 무릅쓰고 제일 먼저 중국 어선 뱃전에 둘러 친 방어막을 뛰어 넘다 바닷물에 젖은 갑판에 미끄러지면서 팔이 골절됐다. 그는 응급처치 후 머무른 후 육지로 후송됐다.

이번 단속은 해경과 어업관리단, 해군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16일 정오부터 17일 오후 6시까지 북위 37도 이남 서해 전 해상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해양경찰 함정 21척, 헬기 5대, 어업관리단 지도선 6척, 해군 고속정 4척 등이 동원됐다. 총 4개 편대로 나눠 실시한 단속을 통해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 10척을 나포했다.

이번 단속은 중국 저인망 어선의 금어기가 지난 15일 해제되면서 급증할 것으로 보이는 불법 조업에 대한 사전 경고의 의미가 크다. 우리 해양 기관이 합동해 선제적 대응을 취한 것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기승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2001년 어업협정을 통해 일정 수의 허가된 어선만 양측 EEZ 내에서 할당된 어획량만큼 조업을 할 수 있도록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 바다쪽 물고기 씨가 마르면서 중국 무허가 어선들은 여전히 한국 EEZ 영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 EEZ 및 영해에서 불법어업 행위로 적발된 중국 어선은 2001년 174척이던 것이 2006년 522척, 2011년 534척으로 늘었다. 지난해도 467척이 불법 행위로 우리 해경이나 어업관리단 지도선에 나포됐고, 올해도 9월말까지 266척이 적발됐다.

해경이나 어업관리단의 검문·검색을 막기 위한 저항도 흉폭해지고 있다. 어업협정 이전인 1990년대 만해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던 중국 선원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삽이나 몽둥이, 쇠파이프 등으로 단속반을 위협했다. 2000년 중반부터는 단속반에게 칼이나 쇠톱, 망치 같은 흉기를 휘둘렀다. 2년 전부터는 후미에 그물을 달아 고속단정의 접근을 막고 있고, 지난해 후반에는 배 옆이나 갑판에 철갑이나 그물을 둘러 단속반이 아예 승선을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중국 어선의 격렬한 저항에 단속 도중 다치거나 숨지는 일이 적지 않다. 2002년 4명의 해경이 단속 중 부상을 입은 것을 시작으로 2010년 14명, 지난해 8명, 올해 7명 등 총 62명이 어업협정 후 단속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 특히 2008년과 2010년에는 단속에 나섰던 해경 2명이 순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으로 우리 측 EEZ나 영해의 어족 자원 보전 자체가 위협받는 실정이다. 올해 한·중간 협약에 따라 우리 측 EEZ 내에서 조업을 할 수 있는 어선은 1600척으로 총 6만t의 고기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 무허가 어선들이 몰려와 조업을 하는데다. 허가를 받은 선박도 그물의 크기를 작게 만들어 치어(새끼 물고기)까지 싹쓸이하는 실정이다. 해경은 올해도 허가 받은 중국 어선의 3배 정도에 이르는 무허가 어선이 EEZ를 침범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수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은 “이번에 대규모 합동 단속을 펼친 것은 불법조업 중국 선박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대응 의지를 보인 것”이라며 “흉폭 해지는 단속 방해에 대해서는 해경 자체 장비 및 인력은 물론 어업관리단, 해군과 연합해 이를 무력화 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철암 기자 kwon6914@joongang.co.kr

* 이 동영상은 특공대원이 증거채집용으로 오른쪽 가슴에 단 소형 카메라로 촬영한 것입니다.

※ 사진 설명 :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전남 신안군 가거도 북서방 28마일 해역에서 16일 중국불법어선 합동단속을 실시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소속 특수기동대원들이 중국어선에 오르고 있다. 중국어선들이 도주하자 서해해경청 항공대 소속 카모프 헬기가 뒤쫓고 있다. 해경은 이날 단속에서 불법어로작업을 한 중국어선 6척을 나포했다. 중국어선 갑판 주변의 파란 부분은 단속요원의 승선을 막기 위해 설치한 철판이다. [프리랜서 오종찬·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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