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들어간지 두달쯤 되었을 때, 6·25가 터졌다. 무기한의 휴교가 선포되자 나는 고향인 시골 농촌으로 돌아가 집안 농사를 거들었다. 뭐가 뭔지 분별할 수 없는 정세의 혼미 속에 우울한 시간이 넘치고 있었다. 불우한 나라, 불우한 시대에 태어났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나이로는 분명 사춘기에 접어들었건만 의식은 얼어붙은 겨울의 빙판에 떨고있었다. 수복이 되자 뒤늦게 교실로 돌아갔지만 전쟁이 뿌리고 간 비극은 너무도 컸다. 몇 사람의 급우는 영영 교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살아서 다시 만나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엄숙한 운명을 느꼈던지. 책꽂이의 먼지를 털고 다시 공부하는 자세를 가다듬은 뒤에도 사회의 혼란은 교문 안으로까지 스며들었다. 그래도 모두들 진지하게 공부에 열중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무척 순진했다. 나 개인으로는 또 하나의 장애와 싸워야 했다. 가난이 동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외아들을 타관으로 보내고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이 나를 분발시켰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립 경제」를 위해 안간힘을 써보았다. 그러느라고 책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결국 인쇄된 서적에서 보다 체험으로 겪은 인생의 관조 속에 나의 젊음은 조노해 버렸는지 모른다.
나의 고교 시절|한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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