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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증세 없는 복지, 의료엔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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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허대석
서울대 의대 교수

무상보육 확대로 지방자치단체마다 재원이 부족해 서울시는 2000억원의 채권 발행을 결정했다. 서울시 외에 사업 중단 위기에 처한 지역들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의 복지 확대 정책에 따라 의료 분야가 건강보험 혜택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이달부터 암·뇌질환·심장병 등 4대 중증질환 초음파 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예상되는 보험 소요 재정은 대략 3000억원이지만 재원 확보 방안에 대한 별도 언급이 없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지난 1년간 영상 검사 관련 보건복지부 정책 변화를 살펴보면 답이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촬영(MRI)·양전자단층촬영(PET) 검사 수가를 15.5~24% 인하했다. 이 때문에 올 1분기 병원들의 진료 수입이 지난해 동기에 비해 580억원 줄었다. CT 260억원, MRI 297억원, PET 3억원이 줄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회 제출 자료). 1년으로 늘리면 23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다. 연동된 다른 진료 감소까지 고려하면 손실은 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병원들의 CT·MRI·PET검사 수입을 깎아 확보한 재원으로 초음파검사 보험 적용에 쓰겠다는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일은 초음파 검사 수가를 병원들이 원래 받던 비보험 가격의 절반에도 못 미치게 낮게 결정했다. 복지부는 추가 재정을 들이지 않고 초음파 검사 보험 적용을 성취했지만 병원들은 CT·MRI·PET검사 수가 인하로 손실을 보고 초음파 검사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이중의 손해가 발생해 연간 6000억원가량이 구멍나게 생겼다. 서울대병원·가톨릭의료원이 지난해 200억원대의 적자를 이미 기록했고, 올해는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큰 폭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돼 병원마다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결국 ‘생색은 정부가, 부담은 병원이’라는 고질적인 한국식 보장성 강화 정책이 이번에도 반복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적정 진료의 모델로 운영하고 있는 일산병원의 경우 시설운영 수익과 건보공단 지원금 등을 제외하면 매년 40억~11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2012년 국정감사 자료). 진료 수입을 보험진료와 비보험 진료로 나누면 보험진료 부문에서 더 큰 적자를 보고 있다. 왜냐하면 보험진료 수입은 원가보전율이 75%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국공립병원은 세금으로, 다른 병원들은 비보험 진료 수입과 장례식장 수입으로 보험진료 분야 손실을 보전해 왔다.

  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이 되는 필수의료행위 수가가 원가 이하임에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정부가 병원의 비보험 진료 수입과 사업 외 수입까지 포함한 자료를 기준으로 건강보험 진료 수가를 결정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 의료기관은 단일 건강보험체제하에서 당연 지정제(병원을 열면 반드시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제도)를 적용받는다.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상품의 가격이나 용역의 대가를 부당하게 결정할 수 없다(남용 금지). 백화점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납품업체에 원가 이하로 납품을 강요한다면 불법으로 처벌받는다.

  그러나 연간 40조원을 웃도는 건강보험을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정부가 원가 이하로 의료서비스를 계속하라고 병원에 강요한다. ‘수퍼 갑’에 가까운 행위가 3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필수 의료에 대한 원가보전 노력 없이 비보험 진료를 억제하기 위해 병원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해 왔다. 또 보장성 강화 명분을 내세워 비보험 진료 영역의 수가를 깎아버린다면 병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다. 그 피해는 환자와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비보험 진료 부분을 대폭 줄이는 정책을 지속하려면 그에 상응해 필수의료행위에 대한 원가보전이 따라야 의료서비스가 지속 가능할 수 있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