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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사람들이 죽을 때는 한 평 반이면 충분하다. 아무리 부귀와 영화를 다한 사람이라도 죽을 때는 한 평 반 이상의 땅을 차지하지 못한다.
이 한 평 반을 위해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을, 또는 피를 흘려야만 하는가.
무덤의 한 평 반은 그러니까 생전에 겪은 시름과 죄와 과오와 후회의 무덤이기도 하다. 산다는 것 이상으로 허망한 게 무덤이라고 할까.
그러나 사람은 그저 회한만을 안고 한 평 반 짜리 땅 속에 들어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모든게 흙 속에 덮이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무슨 짓을 저질러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들먹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죽을 때 남기는 것은 무덤만이 아니다. 무엇인가 남기기 위해서 사람들은 옳게, 그리고 잘 살려고 애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 살려는 것은 자손에게 물질적인 것을 남겨 주려는 알뜰한 부정에서라고 볼 수도 있다. 옳게 살려는 것은 물질적인 것 이 외의 것을 남겨놓으려는 마음씨에서 나온다.
이 두 개 중에서 어느 것을 더 귀중하게 여기느냐에 따라서 삶의 자세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두개가 양립되기 어려운 때에는 그 어느 하나에 치우쳐야 한다는데 인간의 삶의 서글픔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죽어도 이름은 남는다.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사람은 애쓴다. 누구나가 유산을 남기려 애쓰는 것도 이런 때문이라 할까.
유산중에서도 더럽히지 않은 이름처럼 귀중한 것은 없다. 그러나 이름을 더럽혀가면서까지 유산만을 많이 남기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이 세상이다.
그래서 욕된 유산, 욕된 이름들만이 한 평 반 짜리 무덤 주변에 늘어나고 있는 오늘이다. 8일 공개된 유언장서 고 유일한씨는 전 재산을 학교 재산에 기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유언장에 의하면 그가 아들에게 남긴 유산은 한푼도 없다. 딸이 받은 땅 5천평도 「유한 동산」으로 꾸미게 돼 있다.
그러나 그가 자손에게 남기려던 참다운 유산은 자랑스러운 이름이었다. 그것은 돈으로는 헤아릴 수 없이 엄청난 값을 지닌 것이다.
그는 또 자손에게 이름만 남긴 것은 아니다. 그의 참다운 유산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밝은 빛을 안겨 주었다는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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