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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가격 예측 길 열어 … 미 3인 노벨경제학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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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왼쪽부터 파마, 핸슨, 실러.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선정은 파격이다. 이제껏 노벨경제학상은 연구 주제나 방법론, 결론을 공유한 인물에게 수여됐다. 올해는 아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14일 저녁(한국시간) 올해 공동 수상자로 발표한 미국 시카고대학의 유진 파마(74) 교수는 가설의 주창자였다. 반면 다른 수상자인 라스 피터 핸슨(61) 시카고대 교수와 로버트 실러(67) 예일대 교수는 파마의 이론에 대한 비판자들이다.

 파마 교수는 현대 증권 투자이론의 출발점인 ‘효율적 시장가설(EMH)’의 아버지다. 그는 1960년대 “시장은 효율적이어서 모든 정보를 곧바로 주식이나 채권 가격에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주가는 정보가 전달될 때마다 즉각 바뀌기 때문에 미리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그는 “개별 주식 에서 시장 평균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이론에 따라 시장 평균 수익을 추구하는 인덱스펀드가 탄생했다.

 파마 교수의 가설은 현대 금융이론의 주춧돌이 됐다. 그의 가설에 대한 검증만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가 올 수상자인 실러와 핸슨을 포함해 4명이다. 2002년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버넌 스미스는 행동주의 재무이론으로 파마 가설을 비판했다.

 파마 교수의 제자인 경희대 박상수(경영학) 교수는 “그는 현대 재무이론을 정립하고 머튼 밀러 교수(9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와 함께 시카고학파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라며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로 거론돼 이번 수상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마는 자신의 가설을 비판한 후배들과 상을 함께 받게 됐다.

 실러 교수는 파마의 효율적 시장가설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는 “단기적으로 자산가격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면서도 “장기적으론 어떨까”란 의문을 품었다. 실러는 80년대 기업의 배당 기록과 주가 움직임을 분석했다. 그 결과 주가가 배당 실적보다 더 많이 출렁거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파마 교수의 가설대로라면 주가와 배당은 거의 비슷하게 움직여야 했다. 학계 선배인 파마의 가설을 비판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 셈이다.

 하지만 파마의 가설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은 핸슨 교수 이후에 가능해졌다. 그의 제자인 아주대 김용진(경제학) 교수는 “효율적 시장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계량경제학 모델인 ‘일반화 적률계산 방법론(GMM)’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핸슨 교수”라고 설명했다.

 실러는 핸슨 모델 등을 이용해 “현대 시장은 미시적 차원에서 놀라울 정도의 효율성을 보인다. 그러나 거시적·장기적 차원에선 증권 가격이 펀더멘털 가치를 웃돌거나 밑돈다”고 2004년 주장했다.

 두 사람의 비판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더 큰 설득력을 갖게 됐다. 파마의 가설대로라면 발생할 수 없는 엄청난 버블과 붕괴가 목격돼서다. 실러는 요즘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의 저서 중 국내에 번역·출판된 것만도 『이상 과열』 『버블 경제학』 『새로운 금융질서』 등 세 권에 이른다.

 금융이론 역사가인 고(故) 피터 번스타인은 “금융과 투자 이론은 파마 이후 누적적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기존 이론의 전면 부정이 아니라 조금씩 수정됐다는 얘기다.

 그래서인가. 한 가설의 주창자와 비판자에게 동시에 상을 나눠준 노벨위원회는 “주식이나 채권 가격이 며칠 뒤에 어떻게 될지를 알 순 없다”며 “하지만 수상자들은 자산가격이 3~5년 뒤에 어떻게 변할지를 예측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밝혔다. 실러와 핸슨이 파마의 논리를 부정한 게 아니라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봤다는 얘기다.

강남규·조현숙 기자

시카고대 파마·핸슨, 예일대 실러
가설 주창자와 비판자 동시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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