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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논단] 주한미군 철군은 美 큰 실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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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래리 워츨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소장은 한국.중국.싱가포르 등에서 군장교로 근무한 뒤 미 육군성에서 동북아 전략수립 책임자를 역임한 동북아 군사문제 전문가다. 워츨 박사가 최근의 주한미군 재배치 논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 기고문을 본사에 보내 왔다.

그동안 한국에서 반미감정.주한미군철수 요구가 높아져 왔지만, 동시에 미국에서도 일부 학자.정책입안자.의원들을 중심으로 "지난 50년간 별 문제도 없는 곳에 왜 3만7천명의 미군을, 그것도 환영도 못 받으면서 주둔시키느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시킨다면 이는 치명적인 실수다. 첫째 이유로 "왜 6.25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평화가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을 들고 싶다.

둘째는 중국.러시아.일본.한국.북한 등 5개국은 역사적으로 많은 갈등과 원한, 영토분쟁을 겪은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안전판 역할을 해온 주한미군이 떠난다면 이는 아마도 치열한 군비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더구나 3개국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이 중 한 나라는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다.

일본이 논란 속에서도 평화헌법을 지키며 군대가 아닌 자위대만의 병력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것도 주한.주일미군의 존재 때문이다.

이제 한국민들은 주한미군의 이같은 지정학적 역할에 대해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북한과의 대화.참여정책을 표방해온 노무현 대통령도 주한미군이 가져다주는 안정.안보의 중요성을 이미 언급한 바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문제는 이러한 상황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여기에는 그동안의 한.미 동맹 관계를 새롭게 설정한다는 측면도 물론 있다. 50년이나 된 관계라고 해서 항상 똑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오늘날 미국의 군사력은 훨씬 강해졌고 정확해졌으며 전세계 어디에나 바로 배치할 수 있을 만큼의 신속함을 갖췄다. 이는 한반도를 보호하는 데 더 적은 병력으로도 가능해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잘 훈련된 한국군의 전력과 자국의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려는 의지를 감안할 때 이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얘기다.

앞으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양국 국방 책임.실무자들이 서로 협력해 본격적으로 다루겠지만, 나의 관점에서 세부적으로 보자면 우선 주한 미 육군은 장거리 이동 및 전략정보 수집 능력을 높이는 쪽으로 재조정돼야 한다.

현재의 정보부대는 한국군의 지휘 아래 둘 수도 있다. 대신 만일의 사태가 발발했을 때 해외에서 미군이 한반도로 신속히 이동할 수 있도록 주한미군의 병참 능력을 키워야 한다. 보병 중심의 육군을 줄이는 대신 항공방위력과 전략미사일 방어력을 높여야 한다. 이는 비무장지대(DMZ) 등 최전선에서 한국군의 책임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투공병.헌병.의무시설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며, 이 지역에 항공모함의 접근성도 높여야 한다. 물론 괌의 미 공군은 한층 높아진 유사시 대처능력을 갖춰야 한다.

한반도 내에 (미군의 자동개입을 위한)'덫'역할을 하는 전력도 남겨둬야 한다. 크게 보면 이는 한반도 내 미국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조정하는 것이며, 이는 최근의 상황을 감안할 때 한.미 동맹 관계를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되리라 본다.

이제 한.미 양국은 보다 상호보완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통해 군사력 제일주의를 고집하는 북한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된다.

정리=이효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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