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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만원 외투가 19만원 … 상표 없는 짝퉁 명품 판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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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명품 복제품을 판매하는 대구의 한 가게 모습. 가운데 마네킹 오른쪽에 걸린 흰색 셔츠는 몽클레어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다 쓴 복제품이다. [프리랜서 공정식]

7일 오전 서울 신당동의 한 의류 매장. 유명 여배우가 올 초 방영된 드라마에서 입었던 프랑스 브랜드 ‘끌로에’ 코트가 걸려 있다. 공식 가격은 310만원. 그러나 이곳에선 19만원에 판다. 점원은 “로고만 달지 않았을 뿐, 원단과 디자인이 똑같은 국산 복제품”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대구 중심가인 동성로의 상가엔 군복 얼룩무늬 운동화가 진열돼 있었다. 겉보기엔 영락없는 이탈리아 명품 ‘발렌티노’ 운동화다. 그러나 이 역시 로고가 없는 복제품. 정상가는 100만원이 넘지만 여기서는 18만원이다. 가게 주인은 “원하면 나중에 붙일 수 있도록 로고를 따로 주겠다”고 했다.

 명품 브랜드 로고 없이 디자인과 재질만 베끼는 신종 ‘짝퉁’이 유행하고 있다. 업자들이 로고를 단 짝퉁과 구분해 ‘레플리카(replica·복제품)’라 부르는 것들이다. 복제하는 브랜드는 짝퉁과 다르다. 로고까지 붙이는 짝퉁은 루이뷔통·구찌·샤넬 같은 것이 많다. 반면 레플리카는 발렌티노·닐바렛·크롬하츠처럼 진품도 외부에 로고를 잘 붙이지 않는 브랜드들이 복제 대상이다.

 곳곳 매장에서 판매하는 것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서도 번지고 있다. 네이버 검색 창에 ‘명품 레플리카’를 입력하면 이를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만 48개가 떠오른다. 판매한다고 알리는 게시글은 수천 건이다. ‘99% 똑같다’ ‘입고 다니면 진품으로 알 것’이라며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회원이 8만5000여 명에 이르는 관련 인터넷 카페도 있다. 회원들은 어느 인터넷 쇼핑몰, 어느 오프라인 판매점의 레플리카가 더 정교한지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을 벌인다.

 백화점 명품관에는 ‘찍튀족’이 등장했다. 제품 사진을 찍고는 도망가는(튀는) 이들이다. 디자인을 베낀 상품을 만들려는 목적으로 추정된다.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의 ‘아르마니 진스’ 매장 점원은 “둘러보는 척하다가 갑자기 사진을 찍고는 도망가는 일이 1주일에 2~3차례 있다”며 “그러고 며칠 뒤면 수십만원짜리 티셔츠와 꼭 같은 디자인 제품을 1만원 안팎에 판다는 광고가 인터넷에 뜬다”고 전했다.

 레플리카가 퍼지는 이유는 단속이 어렵기 때문이다. 로고가 붙지 않은 상태에서 디자인만 보고 복제품인지 알아내기는 힘들다. 지적재산권 침해 단속을 담당하는 서울 중구청 지역경제과 정정재(47) 주임은 “설혹 디자인이 같다는 점을 알아보고 단속을 한다 해도 정말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는지는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특허청이 최근 3년간 국내에서 적발한 짝퉁 명품 38만 점 6877억원어치 가운데 로고를 달지 않은 레플리카는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단속을 하더라도 처벌을 할 수 없다. 현행 법 규정상 로고를 단 짝퉁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지만, 로고가 없으면 “디자인을 베끼지 말라”고 시정권고를 하는 것으로 끝이다.

 한국의류산업협회 지적재산권 보호센터 이재기(38) 법무팀장은 “일본은 로고 없이 디자인만 침해해도 형사상 처벌을 해야 한다”며 “한국이 창조경제, 지식경제 강국으로 가려면 단순히 상표가 없다고 짝퉁을 처벌하지 않는 법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호·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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