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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첫걸음 뗀 'MIKTA'를 주목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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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남정호
중앙SUNDAY 국제선임기자

퀴즈. ‘멕시코·인도네시아·터키·호주’. 이들 네 나라의 공통점은 뭘까.

 한국전 참전국? 유엔 안보리 확대 반대 모임인 커피 클럽(Coffee Club) 멤버? 아니다. 얼마 전 한국과 함께 국제무대에서 힘을 모으기로 한 중견국(Middle Power)들의 면면이다. 강대국도 아니고, 그렇다고 약소국도 아니다. 세계 무대에서 딱 중간 정도의 힘을 가진 나라들이다. 꼭 기억하자. 한국의 최측근 동맹국 후보들이다.

 대부분 언론이 외면했지만 유엔총회가 열렸던 지난달 25일, 뉴욕에선 의미 있는 모임이 열렸다. 윤병세 장관 등 5개 중견국 외무장관들의 첫 회동이었다. 장소는 유엔본부 코앞의 멕시코 대표부. 국내총생산(GDP) 1조 달러 안팎으로 국제사회에 기여하려는 나라들을 모았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뜻 맞는 이슈엔 한목소리를 내자고 다짐했다. 이름도 지었다. ‘중심축 국가(Pivot Power) 모임’, ‘기여 국가(Contributor Power) 클럽’ 등 아이디어가 속출했지만 ‘MIKTA’로 했다. 각 국명의 이니셜을 땄다.

 하루 수십 건의 정상회담이 열리는 게 유엔총회 무대다. 이런 데서 고작 다섯 나라 외무장관이 모인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은 모임이 한국 외교의 고질병을 고칠 비방(<7955>方)일 수 있기에 눈 씻고 보자는 거다.

 동구 공산권이 무너진 지 어언 20여 년. 불행히도 한국 외교의 기본 틀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1989년식이다. 김일성 3대가 한국 외교에 끼친 최대 폐해인 냉전구조의 고착화 탓이다. 한국 외교는 여전히 한·미 관계에 목을 맨다. 다른 열강과의 외교, 즉 한·중, 한·일, 한·러 관계가 그 다음이다. 주변 열강과의 관계가 중시되는 양자 외교 일변도다. 안보 최우선도 불변이다. 지금도 우수한 외교관들이 숨겨진 북한의 핵폭탄이 몇 개인지 세는 데 급급하다. 외교력의 낭비요, 한반도의 비극이다. 박제된 행태는 보다 생산적인 다자외교의 기회를 앗아갔다.

 지난해 인도를 갔을 때다. 한 인도 외교관이 진지하게 물었다. “한국은 인도와 군사적 동맹을 맺을 의향은 없냐”고. 인도에는 중국이 최대의 가상적국이다. 1962년에는 국경분쟁으로 전쟁까지 치렀다. 그래서 인도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할 동지로 한국을 염두에 둔다”는 거다.

 어느새 딸아이의 가슴이 봉긋해지듯, 의식을 못해서 그렇지 한국의 국력은 여러 분야에서 훌쩍 컸다. 한국의 군사력이 세계 7~8위라는 건 공인된 사실이다. 인도가 군사동맹을 맺자고 할 만하단 얘기다.

 이렇게 국력이 자랐음에도 한국은 북한과 주변 강대국에 치여 그 너머를 잘 못 봤다. 잠재력에 비해 다른 나라와 제대로 협력하지도, 돕지도 못했다. 그 탓에 한국에 대한 인식은 ‘개천에서 난 용’일 뿐 대체로 냉랭하다. 특히 동남아에 가면 형편없다.

 5~6년 전 네팔에서 한 한국 관광객이 걸어가는데 갑자기 돌이 날아왔다고 한다. 잡고 보니 한국에서 일하다 손이 잘린 노동자의 친척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원한을 산 거다. 스리랑카·중국 등지에서 현지 근로자들을 한국식으로 몰아붙였다 격렬한 노사분규가 속출했다.

 그렇다면 비뚤어진 이미지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나. 지름길은 없다. 국제사회에서 덕을 쌓는 수밖엔 없다. 가난한 나라 지원하고 분쟁지역에 가 치안을 도와야 한다.

 특히 중견국으로서 기후변화 문제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다. 현재 배출가스 축소를 놓고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반목이 심하다. 그러나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발전한 한국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 귀를 기울인다. 양측 간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국제사회도 사람 사는 곳과 똑같다. 초강대국이 아닌 한, 혼자 떠들어봐야 들은 척도 안 한다. 하나 무리 지어 주장하고 행동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슷한 입장의 중견국들이 모여 힘을 합쳐 뜻 깊은 일을 하면 그 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 MIKTA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마침 중견국 외교를 중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인도네시아에서부터 동남아 순방을 시작했다. 듬직한 새 동지와 함께 무슨 좋은 일을 할지 논의할 절호의 기회 아닌가.

남정호 중앙SUNDAY 국제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