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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유괴범의 폭행·성적학대에 지쳐 친부모 존재 잊고 굴종하는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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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대디 러브
조이스 캐럴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포레
352쪽, 1만3000원

괴물같은 소설이다. 잠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면, 마지막 장까지 내달리느라 밤을 꼬박 새울 공산이 크다. 잠이 들었다면, 단언컨대 당신은 악몽을 꾸게 될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조이스 캐럴 오츠(75)의 신작이다. 1964년 데뷔해 50여 편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을 발표한 다작 작가로 ‘문학의 여제(woman of letters)’라는 상찬을 듣고 있다. 그의 많은 작품을 하나로 꿰는 주제는 폭력과 부조리다.

 여섯살 남자 아이의 유괴 사건을 그린 신작 『대디 러브(Daddy love)』도 그가 줄곧 그려온 잔인한 세계와 맞닿아있다. 자칭 ‘대디 러브’라고 부르는 유괴범은 5~6세 남자 아이를 유괴해서 키우다가 12세가 되기 전에 살해하기를 반복한다. 아이들은 지속적인 폭행과 성적 학대로 친부모의 존재를 잊고 ‘대디 러브’에게 굴종하고 만다.

 여타 유괴를 다룬 작품과 다른 점은 모든 인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선한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유괴범은 “아이의 영혼을 구원하려면 친부모만으로 부족하다”(69쪽)고 생각하고, 유괴당한 아이 로비는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인질범에 동화되는 현상)’을 보이며 유괴범에게 사랑의 감정까지 느낀다. 그러니까 이 흉악한 범죄는 의도된 악(惡)에서 비롯되지 않아 더 끔찍하다.

 저자가 이야기를 요리하는 솜씨도 놀랍다. 특히 에두르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소설의 첫 장면은 그 충격의 깊이가 대단하다. 엄마의 눈 앞에서 아이를 낚아채는 유괴범을 다른 각도에서 여러 차례 묘사하면서 직설적이지만 풍부한 서사를 만들어냈다.

 결말은 어떻게 될까. 적어도 아이가 죽고, 부모는 오열하는 안일한 방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끔찍한 사건에 주목해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 이후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 진짜 비극이다.

 작가는 “내 작품에 폭력성이 너무 많다고 하는 것은, 우리 삶에 현실성이 너무 많다고 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 책장을 덮고 나면 더 악랄한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질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소설을 리뷰하면서 “이 잔혹한 이야기는 몇 개의 비수를 쥐고 있다. 가장 끔찍한 비수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75세 고령의 작가가 이렇게 군더더기 없이 벼려낸 소설을 쓴다는 것이 경이롭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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