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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는 나를 몰랐다|단장의 레이스…삽보로 「프리·올림픽」의 남과 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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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삽보로=조동오특파원】「프리·올림픽」에 참가한 한국의 김영희 양과 북괴 선수로 참가한 김 양의 이모 한필화는 같은 링크에서 숙명의 대결을 하게 됐다.
김영희 양은 한필화가 난생 처음 보는 이모라는 사실을 알고 3일과 4일 이틀동안 연습장 링크에서 이모 한필화와 몇 번씩 스쳤지만 빙판을 가르는 날카로운 쾌속음만이 여울질 뿐 처음 만난 두 혈육은 대화가 없었다. 한국 선수들은 북괴에 앞서 연습해왔고 북괴 선수들은 지난 1일에야 삽보로에 도착 「마꼬마나이·링크」에서 지난 3, 4일 상오 중 2시간씩 함께 연습을 했다. 북에서 온 이모를 처음 본 김영희 양은 『한필화가 너의 이모라지?』라는 기자 질문에 고개를 떨구면서 『이모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고 싶었다』면서 『처음 본 이모 한필화는 살짝 곰보였다.』고 말했다.
한과 김 선수는 같은 「스피드·스케이터」로 빙상에서 여러 차례 스쳤지만 날카로운 북괴 임원들의 감시의 눈초리는 이내 30여명의 정체 불명의 청년과 합세, 연습이 끝난 한을 에워싸 주위와 접촉이 막힌 채 이모와 조카의 눈망울만의 상봉도 아쉽게 끊겼다. 그러나 두 선수는 공교롭게도 출전 종목 (1천5백m와 3천m)이 똑같아 어쩌면 경기 당일인 13일과 14일에 불꽃튀는 레이스를 벌이게 될지도 모른다.
1m57㎝의 키에 야무진 체격을 갖춘 김영희 양은 환상같은 이모와의 상면을 마치고 링크를 나와 식당에서 기자와 만나 『나의 의미 있는 눈초리를 이모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그저 북괴 선수단의 선두에 서서 리드만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생전 처음이라서 그런지 이모를 이모라고 불러볼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내가 가까이 가서 말을 걸면 무슨 화가 이모에게 떨어질지 모르잖아요?』라고 김영희 선수는 말했다.
정체 불명의 조총련계 「보디·가드」들은 김영희 양과 한의 관계를 눈치챘음인지 연습이 끝나 한이 「라커·룸」에 들어가면 그 앞을 가로막아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으름장을 부렸다.
조카 김영희양과 이모 한필화의 숙소는 같은 「파크·호텔」 5층이지만 방은 각각 양쪽 끝방으로 제일 멀리 떨어져 있다. 기자들이 5일 밤 10시에 한필화를 찾아도 『한이 외출하고 안 돌아왔다』고 딱 잡아뗐다.
일본 신문들은 『남북으로 갈린 육친끼리 기를 겨룬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심고 『북괴의 스케이트계의 거성 한필화와 최연소 선수 김영희 양과 대화의 기회는 꺾이지 않았다』고 썼다.

<영희양 부모와 국제 전화>
6일 하오 중앙일보 편집국에 나온 김영희 양의 아버지 김성회씨와 어머니 한계화씨는 삽보로 본사 임시 취재 본부에 나온 김영희 선수와 약 30분 동안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영희야! 기록 재봤니.
▲김영희=네, 좋은 편이에요.
▲아버지=연습 많이 해야한다. 5분대를 마크해라. 그리고 이모 만나봤니?
▲김영희=연습장에 나왔는데 아직 말은 못 건네봤어요. 아버지! 진짜 이모예요?
▲아버지=…….
▲어머니=어때, 엄마 좀 닮았니?
▲김영희=네, 닮았어요. 얼굴 색도 같고 새카맣게 그을었어요. 거칠고….
▲어머니=체격은 어때?
▲김영희=커요. 체격이 좋고 좀 나이가 들어 보여요.
▲어머니=이모한테 이길 자신 있어?
▲김영희=달려봐야죠.
▲어머니=넘어지지 말고 꼭 이겨야해.

<김양 어머니 도일하면 협조>대한 체육회서 밝혀
대한 체육회는 6일 북괴 여자 대표 선수 한필화의 언니인 한계화씨가 동생을 만나러 삽보로에 가기를 원한다면 최대한으로 협조를 하여 주겠다고 밝혔다.

<국민교 때 중앙일보대회 우승>김영희선수
「프리·올림픽」참가 선수 중 가장 나이 어린 선수이자 북괴 대표 한필화의 조카인 김영희 (14·상명여중 2년) 선수가 처음 스케이트를 시작한 것은 서울 영등포 영남 국민학교 5학년인 11세부터.
영희는 스케이트를 시작한지 불과 20일만에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서울시 국민학교 빙상대회에 처녀 출전을 하여 B조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운동에 소질을 인정받았다.
자신을 얻은 영희는 겨울 한철을 얼음판 위에서 보내고 이듬해 6학년이 되자 중앙일보사주최 전국 국민학교 빙상 대회, 백곰기 대회 등 각종 스피드·스케이팅 대회에서 1천5백m. 3천m 등 중장 거리에 두각을 보여 상위에 입상하곤 했다.
빙상부가 없는 상명여중에 입학한 영희는 코치도 없이 아버지 김성회씨의 지도로 한강 스케이트장에서 하루 3, 4시간씩 하드·트레이닝, 대표 선수로의 꿈을 다져왔다.
신장 1m57㎝, 체중44㎏으로 중학생으로는 좋은 체격을 가진 영희는 작년 1월 춘천에서 열린 종합 선수권 대회에서 1천5백m에 2분47초9로 4위, 3천m에서 5분46초5로 2위를 차지했고 종목별 선수권 대회에서는 3천m에 5분48초5로 3위에 입상, 도일 전지 훈련단에 당당히 선발됐다.
작년에 무명 선수에서 일약 대표 선수가 된 영희는 이후 일본 전지 훈련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기록, 프리·올림픽 선수단에 선발됐는데 그는 커리어 부족에서 오는 코너·웍이 약한 것이 흠.

<어릴 땐 살짝 곰보 아니었다.>언니가 말하는 한
한계화씨가 더듬어본 가족 상황은 다음과 같다. 북한에 살아 있다면 올해 58세가 되는 김영희양의 외할아버지 한창익씨와 외할머니 이부자씨 (60)는 6남매를 두었다.
석순(36), 명자 (33), 정자 (29) 필화 (27), 석진 (23)-. 그중 장녀인 계화씨는 1·4후퇴 때인 50년12월23일 바로 아래 남동생 석순씨 (내무부 중앙건설 본부 중기과 근무)와 함께 함흥시 남문리 3∼64) 에서 월남했다.
창익씨는 당시 함흥 여자 사범학교 본과 2학년에 다니던 계화씨와 영상중 3년의 석순씨를 먼저 해군 함정 편으로 내려보낸 뒤 가족들을 데리고 뒤따른다면서 『서울서 만나자』고 굳게 약속했었다.
월남할 때 필화는 여섯 살로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계화씨에 의하면 필화는 어렸을 때부터 사내 애들처럼 활발, 개구쟁이란 놀림을 받았었다. 월남 당시 필화는 아직 스케이트를 배우지 않았지만 다리가 길고 몸이 늘씬하여 스케이팅, 사이클 선수였던 아버지 창익씨는 『계화와 필화가 내 운동 소질을 제일 많이 닮은 것 같다』고 말해왔다는 것-.
계화씨는 그 뒤 함흥 여자 사범 예과 1학년 때부터 스케이트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함남 대표 스케이팅 선수로 평양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고, 여자 육상에서는 8백m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1·4후퇴 때 해군 함정 편으로 거제도까지 내려올 대 계화씨의 짐은 옷 몇 벌과 스케이트(오슬로·하겐) 한 벌뿐일 정도였다.

<"경기 후 얘기하자"|조카 있다에 당황한 한>
【삽보로=조동오 특파원】6일 아침 진구내 경기장에서 김영희 선수와 한필화는 다시 만났다. 그러나 서로 누구라는 것도 모르고 말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졌다. 이날 한은 예정 연습 시간인 상오 9시30분보다 10분 늦게 다른 5명의 북괴 여자 선수들과 같이 경기장에 입장, 김 선수가 섞여 링크를 돌고 있는 한국 선수 측에는 얼굴도 돌리지 않고 예비 운동만 하고 있었다. 9시부터 연습을 끝낸 한국 선수들이 벤치에 나와 스케이트를 구두로 바꿔 신고 있을 사이 바로 옆 벤치에서 북괴 선수들은 구두를 스케이트로 바꿔 신었지만 힐끗힐끗 쳐다볼 뿐 두 벤치 사이를 가로막는 조총련계의 인파 때문에 이 두 숙질은 얼굴을 맞대지도 못했다.
이윽고 북괴 선수들이 링크에서 연습할 동안 마침 입장한 서울 은석 국민교 어린이 스케이트단과 한국 선수들은 기념 촬영을 마치고 선수촌에 들어가 상오 11시부터는 민단 (북해도) 회관에서 거행되는 선수단 결단식에 참석했다.
북괴 선수들이 연습할 동안 북괴 선수단의 선전 책임자인 조총련 조선통신사 사장 이형구는 김 선수와 한필화의 관계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한계화 (김 선수의 어머니)란 선수가 있었던 것은 알고 있지만 『여자 형제도 돌림자가 있느냐』고 되물으면서 본적도 함흥 (김 선수)과 남포 (한필화)로 다르고 한도 그런 조카가 있는 줄 몰랐다는데 전혀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부인 일변도였다.
연습이 끝난 다음 그라운드에서 한국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한은 김 선수와의 관계를 묻자 『조카요?』라고 반문하면서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고 오른쪽 팔을 번쩍 들어 흔들면서 『경기가 끝나면 만납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젊은 호위들에게 둘러싸여 경기장 밖으로 사라졌다.
이때 동행하는 북괴 선수단장 손길천은 김 선수와 한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고 무뚝뚝한 평안도 사투리로 『알고도 남음이 있디요』라면서 모략설을 내세운 다음 『근거없는 얘기디요』라고 딱 잡아떼며 핏줄마저 끊으려는 북괴의 근성을 드러냈다.
한편 경기장에서 만난 김 선수는 기자 질문에 대해 일체 노·코멘트.

<"꿈만 같다"|영희양 부모 본사 찾아>
『필화와 영희가 한 링크에서 뛰게되다니-』5일 밤 일본으로부터 동생 필화와 영희가 눈길을 맞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영희 어머니 한계화씨 (39·영등포구 당산동 1가 4)는 목이 메어 말을 잘 잇지 못했다. 『기쁘면서도 슬픈 기분으로 가슴이 꽉 막히는 것은 웬일인지 모르겠어요.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요. 그저 꿈만 같습니다.』
계화씨는 남편 김성회씨 (45·식당 경영)를 꼭 붙들고 어린애처럼 울고 또 울었다는 것이다.
계화씨가 동생 필화 얘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64년2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날아온 한글의 외신 기사에서 였다. 『북괴 여자 빙상 선수 한필화 (27)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천m에서 2위로 입상했다』는 기사를 읽고, 계화씨는 한참동안 자기 눈을 의심했다는 것이다.
계화씨는 필화를 만난 딸이 『이모는 살짝 곰보였다』는 말에 헤어질 때인 21년 전 『필화가 6살 땐 곰보가 아니었는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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