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5년간의 고독, 5년 후의 고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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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규연
논설위원

할머니 자매 고독사 사건-. 14년 전 일본 열도를 흔든 비화(悲話)다. 비극은 일본 도쿄 남쪽의 가나가와현에서 일어난다. 함께 살던 쌍둥이 자매(77)가 나란히 숨진 채 발견된다. 자매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언니를 동생이 병수발을 해왔다. 어느 날 동생은 뇌출혈로 쓰러진다. 식사를 못하게 된 언니는 동생 시신 옆에서 아사(餓死)하고 만다. 두 할머니의 시신은 수십 일 뒤 발견된다. 주민자치위원이 둘러보러 갔다가 참혹한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당시 일본의 지방정부는 혼자 사는 노인에게 매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서비스를 시행 중이었다. 정기적으로 방문해 건강점검도 해주고 있었다. 소극적인 고독사 대책은 세워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 자매는 이런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다. 언론은 복지시스템에 구멍이 났다고 질책했다. 이후 충격적인 고독사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2007년 일본 정부는 ‘고독사 제로 프로젝트’를 내놓는다. 급성 질병 통보 시스템을 만들고 전기·가스 사용량을 살피는 방식으로 혼자 사는 노인들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의 노력은 성공했을까. 2010년 NHK 방송이 ‘무연사 3만2000명 충격’이라는 특집을 내보낸 것을 보면 그리 후한 대접은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 고독사가 큰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다. 전체 인구 중 노인 비율이 14%에 이르는 ‘노령사회’에 진입하던 시기다. 이때부터 정부가 나름대로 대책을 세웠는데도 “좀 더 빨리 적극적인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5년간의 고독사 사건-. 얼마 전 부산진구에서 날아든 비보다. 관할 형사들은 112신고를 받고 부산어린이대공원 부근 초읍동의 쪽방을 열고 들어간다. 거미줄이 쳐진 방 안 가운데 미라처럼 누워 있는 김모(67) 할머니의 시신을 발견한다. “할머니는 사망 당시 추웠는지 옷을 9, 10 겹이나 끼어 입고 있었다. 시신 상태 등으로 봐서 돌아가신 뒤 5년가량 방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진경찰서 관계자)

 이웃은 어떻게 5년간이나 할머니의 고독을 몰랐을까. 할머니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두 평 단칸방에서 보증금 700만원, 월 10만원을 내고 혼자 살았다. 인근 사찰에서 자주 머물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이웃은 절에 갔다고 생각했다. 집주인도 밀린 월세를 보증금에서 차감할 수 있어 적극적으로 찾지 않았다. 한 동네 주민은 “그 쪽방에서 사람이 사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할머니는 유령이나 마찬가지였다.

 복지그물망은 또 어떻게 5년간이나 할머니의 고독을 구원하지 못했을까. 초읍동주민센터 복지담당 직원은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 신청 등을 하지 않아 관리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초읍동 주민은 2만5000명, 복지담당 직원은 단 2명이다. 둘이 기초생활수급대상 600명, 차상위수급 200명, 기초노령연금 2200명을 관리하고 있었다. 서류 처리만 해도 버거운 상황이다. 말단 복지시스템이 현장의 사각지대를 깐깐히 찾아내기 어려운 상황임을 또 한번 보여줬다.

 마침 노인의 날(10월 2월)을 맞아 실버 통계가 공개됐다. 노인 인구가 600만 명을 넘어서 전 인구의 12.2%가 됐다는 발표였다. 5년 후인 2018년에는 우리도 노령사회로 진입한다. 1990년대 일본의 인구 구조가 되는 것이다. 당시 일본 사회는 그런대로 지역사회·복지 그물망을 갖춰 놓았는데도 지금 고독사 쇼크에 휩싸여 있다. ‘5년간의 고독사 사건’은 고령화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가 20년 전의 일본보다 낫지 않음을 보여준다. 5년 후의 고독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올들어 유난히 고독사 뉴스가 자주 들려온다. 노령사회의 충격을 예고하는 풍경소리가 들린다. 곧 거센 은색 바람이 닥친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