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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면 끝장이다 우기고 보자 언제부터 이렇게 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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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사회의 여론이 두 갈래로 쫙 갈리는 현상 말이다. 모세의 기적인지, 진도 ‘신비의 바닷길’인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으르렁대는 양편이 대세를 점하고 있다. 중간지대는 메뚜기 마빡보다도 좁다. 각계 인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문제가 제기되면 다들 한숨을 쉰다. 그러나 시원한 해법은 좀체 나오지 않는다. 조선시대 당쟁에서 연원을 찾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이익사회의 본모습이 원래 이런 것이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분도 있다. 과연 시간이 흐르면 해소될까.

 대화 모임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유명 사립대 철학과의 C교수가 최근 자신의 미국 유학 시절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1990년대에 버클리대 대학원생이었다. 결혼해 아이도 있는 가난한 처지라서 아침마다 대학 구내 보육센터에 들러 다섯 살배기 아이를 맡기고 등교했다. 그때마다 아이는 엉엉 울며 아빠와 헤어지지 않으려 했다. 하는 수 없이 레고 같은 장난감을 안겨주고 거기에 정신이 팔린 사이 살짝 빠져나오곤 했다. 몇 차례 지켜보던 나이 든 흑인 여성 보육교사가 어느 날 그를 불렀다. “아이가 현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편법을 쓰지 말아라. 울든 말든 아빠는 학교에 가야 한다고 팩트(fact)를 알려주어라.” C교수는 “보육교사가 ‘분명하게 매듭지어라(finalize)’고 말할 때 솔직히 쇼크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C교수의 다른 경험담이다. 유학생이나 배우자는 시간 날 때 보육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봉사하면서 보육센터의 규칙 하나를 알게 됐다. 아이들은 새롭거나 재미있는 장난감을 탐내기 마련이다. 한 아이가 인기 있는 장난감을 차지하면 다른 아이들이 모두 부러워한다. 갖고 놀다 보면 ‘쉬야’가 마려울 때가 있다. 자리를 뜨자니 모처럼 차례가 돌아온 장난감이 아깝다. 이럴 때를 대비해 보육센터에선 두꺼운 종이로 만든 빨간 딱지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 딱지를 장난감 위에 올려놓고 화장실에 가면 아무도 장난감에 손을 대지 않았다. 임자가 있으니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그게 규칙이었다. 모두가 동의한 룰(rule)이 작동하므로 공평과 정의가 유지됐다.

 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하는 것은 현실의 엄연한 팩트, 사실이다. 탐나는 장난감 위에 놓인 빨간 딱지는 규칙, 룰의 상징이다. 인종·문화 측면에서 미국보다 훨씬 단출한 한국 사회는 어떨까. 토론? 팩트에 기반하기보다 자기 진영의 결론을 먼저 만들어 놓고 싸우러 간다. 팩트는 장식품이다. 밀리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니 무조건 우기고 본다. 토론이 될 리 없다. 규칙? 이미 합의해 만든 규칙도 순식간에 헌신짝 취급이다. 규칙을 어기면서도 웬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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