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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 지배하는 한국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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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한국 정치는 정치학보다는 물리학으로 봐야 설명이 잘된다. 물리학의 지평을 정치 분야로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전 세계 물리학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하다. 뉴턴이 정립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운동의 제3법칙)은 한국 정치의 신조임에 틀림없다. 작용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있고 반작용의 힘은 작용의 힘과 크기는 같지만 방향은 반대라는 이 원리에서 여야는 한 치의 오차가 없다. 과거 여당의 법안 강행처리에 야당의 장외투쟁은 공식처럼 작동했고, 이번엔 국정원 개혁을 놓고 청와대·새누리당이 야권의 대선 불복 심리로 자극하자 민주당은 장외투쟁에 이은 ‘독한 원내투쟁’으로 맞대응했다. 상대 당 의원에 대한 고소엔 맞고소로 예외 없이 뉴턴의 제3법칙을 따르며 작용과 반작용을 확대 재생산하는 게 우리 정치다.

 작용과 반작용의 충돌은 막장으로 귀결된다. 2008년 12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가 대표적이다. 당시 여당이 비준안 상정을 위해 국회 외통위 회의장을 봉쇄하자 야당은 전기톱과 해머로 문을 부쉈다. 이쯤 되면 운동에너지의 공식이 국회에 적용된 사례다. 운동에너지=½mv²로, 운동에너지는 질량(m)에 비례하지만 속도(v)에선 제곱에 비례한다. 그러니 혹시라도 야당 의원들이 해머를 또 쓸 일이 있다면 과학적으로 사고해서 무거운 해머보다는 더 빨리 내려칠 수 있는 해머를 찾기 바란다.

 한국 정치의 다른 특징은 같은 현상을 놓고도 서로 다르게 듣는 도플러 효과다. 도플러 효과는 움직이는 기차가 다가올 땐 소리가 높은 음으로 들리고 멀어지면 낮은 음으로 들리는 원리다. 지난 추석 민심을 접한 뒤 새누리당에선 “민주주의를 위해 장외투쟁을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에 콧방귀를 뀌더라”고 했고, 민주당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불통을 우려하는 얘기가 많았다”고 했다. 서 있는 지점이 다르니 정치에 지친 민심이 어디론가 향하며 내는 경고의 기적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

 한국 정치는 급기야 뉴턴 물리학을 넘어 전 우주 차원의 천체 물리학으로 확대됐다. 빛이 1년간 가는 거리가 1광년이다. 따라서 8.6광년 떨어져 있는 밤하늘의 시리우스는 8년여 전 모습이고, 약 250만 광년 떨어져 있다는 안드로메다 은하는 250만 년 전의 과거다. 시야에 펼쳐진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같은 시간대에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국정원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주도한 이른바 ‘RO 회합’에선 비비탄총 개조나 철탑 파괴와 같은 250만 년 전 안드로메다에서나 나올 법한 외계어가 등장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다른 시간을 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물리의 세계에선 1+1=2다. 그러나 정치는 다르다. 민심은 1+1을 때론 0으로 만들고 때론 3으로 늘린다. 민심이라는 상수 때문에 협상과 타협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정치다. 그러니 물리가 지배하는 정치는 ‘과학적 정치’가 아니라 ‘서글픈 정치’다.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