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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울의대 내과의의 오진 율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L박사「팀」의 조사보고에 따르면 29·7%로 나타났다. 1백 명의 환자 중 적어도 평균 30명은 치료를 잘못 받은 셈이다. 병명을 제대로 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사의 오진은 불가피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질병은 원인미상이 허다하다. 물론 원인 없는 병은 있을 수 없지만, 그 원인이 너무 깊이 숨어있을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가령 위장병을 정신과의사가 치료해야하는 경우가 오늘엔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다. 그만큼 현대의 질병은 다양하고, 「델리키트」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오진 율은 단순히 그런 의학적인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의사의 태도와 성실성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오진의 원인분석을 보면 선입관이 20%를 차지한다. 대충 환자의 진술만으로 『음, 그 병이군!』하는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진단 학의 초보에 「룰·아웃」(rule-out)이라는 것이 있다. 의사는 환자의 고백과 각종 검사를 통해 우선 그와 같은 증상을 나타낼 수 있는 병명을 총망라한다. 그리고는 그 병의 원인과 거리가 먼 병명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는 병명이 있을 것이다. 이경우 의사의 선입관에 의한 판정은 포함될 수 없다.
이런 진단은 의사의 인간성과 인내와 성실성이 필요하다. 몇분 만에 뚝딱 진단을 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최근 미국의 「존즈·홉킨즈」대학병원은 의사가 환자를 면담하는 시간이 얼마가 가장 이상적인가를 「체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주의 깊게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환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얼렁뚱땅 진단을 끝낼 수는 없다.
의사들은 누구나 『두발에서 발톱까지』라는 의학교수의 교훈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환자를 「체크」할 때, 다만 증상의 호소에만 의존하지 말라는 뜻이다. 신체의 전 부분을 샅샅이 살핀 연후에야 판정은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의사들의 오진 율을 자극하는 것은 의사의 직책이 한낱 「샐러리맨」화하는 것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엄숙한 자세에 앞서, 그저 월급장이의 역할로 만족하고 마는 것이다.
의사가 생명탐구자의 성의와 열의로써, 그리고 인간재건의 엄숙한 사명감에 넘쳐 환자를 마주할 때, 감히 오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의사의 「모럴」은 어느 직책의 경우보다도 귀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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