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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김찬삼 여행기<타이티서 제5신>|문명의 오염 속에 멍드는 자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타이티」섬은 화산 도로서 길은 고리처럼 섬 둘레에 둘러져 있다. 길가에는「프랑스」 풍의 아롱진 꽃밭이며,「모네」의 그림과도 같은 아름다운 연못이었는가 하면 구슬과도 같이 맑은 물이 떨어지는 자그마한 폭포들이 있어서 이 선은 오밀조밀하게 꾸민 정원과도 같다.
그리고 늘씬한「코코넛」나무들이 바다나 시냇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풍경은 정말 멋이 있다. 특히 거다란 열매가 잔잔한 물위에 비친 것을 보노라면 여인의 얼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한 송이의 아름다운「세네치오」란 꽂을 주황색의 우아한 소녀의 얼굴로 비유하여 그린「파울·클레」의 그림이라고나 할까, 홀아비 생활을 하는 나에겐 이렇게 한 식물의 열매까지도 의인화되는 것이었다.
아, 또 부질없을 독백을 뇌까렸나 보다. 그런데 바닷가의 야자나무들의 허리에 너비 30∼40cm 가량의 함석을 모두 둘렀기에 늙어서 혹 꺾어질까 봐 그러는 가 했더니 쥐들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섬 쥐들은 어린 열매를 즐겨 갉아먹기 때문에 이른바 방범용으로 이런 방법을 쓰는 것이다.「코코넛」은「타이티」섬에서 잘 열리는 식물인데 이 속의 열매를 말린 것이「코프라이」이다.
여러 섬을 다니며 원주민들에게 일용품과 교환하여 이「코프라」를 거둬들이는 수집 선인 「스쿠너」가 몇 척 부둣가에 정박하고 있는데 이 배에선 역할만큼 짙은「코프라」향기가 온 부두에 풍긴다. 이것들은 모두「프랑스」로 보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짭짤한 바다 냄새가 나는 바닷가에「코프라」향기가 풍기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마스가니」의 가극『가발레리아·루스티가나』의『「오린지」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란 아름다운 합창곡처럼 바다의 미풍에 마치 파도처럼 날려 오는 이 향기를 맡고 있노라니 「코프라」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란 더욱 아름다운 음악을 누가 짓지 못한 것이 가엾이 아쉬울 뿐이었다. 이「코프라」의 짙은 향기가 풍기는 항구는 정말 낭만과 시 취가 넘쳐흐른다.
이「타이티」섬은 주산업인「코프라」이외에도「코피」를 비롯하여 세계에서도 손꼽히는「바닐라」향료를 내고 있는 만큼 천연의 관광지로서 돈을 벌기도 하지만 훌륭한 산물을 내고 있는 풍요의 땅이다. 서울「파피테」의 인구의 약 5분의1이 중국인인데 이들은 맨 처음 면화·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하여 들여온 이민들이라고 한다.
지금은 습지대를 개간하여 벼농사를 짓기도 하고 그들 특유의 잡화상이며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데, 이곳의 경제적인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이「타이티」는 아름다운 고장이기도 하지만 이렇듯 좋은 땅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여러 나라가 눈독을 들인 것이다.
이미 17세기초에「스페인」사람이 발견한 뒤 영국 사람이 상륙하고는 본국의 천문학자며 박물학자들을 태운 학술 조사 선을 보내어 여기서 금성을 관측하기도 하였다.
그때의 공헌이 컸다고 하여「소사이어티·아일랜드」(학회 저도)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인데 지금도「타이티」를 중심으로 한 여러 섬들을 통틀어 이런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같이 역사적으로는 영국과 매우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그 뒤「프랑스」세력이 이 섬에 뻗쳐서 19세기 중엽에는 가냘픈「타이티」왕국을 무너뜨리고「프랑스」영토로 만들었으며, 후세에는 식민지가 되어 오다가 1957년 이후「프랑스」해외 영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2차대전 초기에 독일이「프랑스」를 점령했을 때에는 본국과의 연락이 끊겨 매우 어려운 고비를 넘기게 되었으나 미국과「오스트레일리아」의 도움으로 겨우 연명했는데 대전 중에는 연합군의 남태평양의 작전기지로서 큰 구실을 했던 곳이다.
미국이 이 섬에서 활약한 것은「뮤지컬」영화『남태평양』에도 잘 그려져 있듯이「타이티」섬의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보라보라」에는 미 해병대 기지가 있었다. 이곳은 특히 미인의 고장으로서 유명하기 때문에 그 영화 속에「로맨스」까지 나오지만 주연 여주인공도 이곳의 미인 중에서 뽑았다고 한다.
지상 낙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타이티」섬도 전쟁의 상처를 받은 곳이니 전쟁에 유린 되지 않은 땅이란 이 지상엔 없겠지만 무구한 땅이라야 할 이 원시의 섬이 자꾸만 물질문명의 영향을 받고 문명인들의 쾌락의 땅으로 바뀌는 것은 서운했다.
그러나「스페인」「프랑스」미국 등의 오만가지 피가 섞여 아름다운 혼혈아로서의「피의 종합 미」를 낳은 것은 희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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