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집권 2년 차엔 증세 고려할 가능성”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상균 명예교수 사회복지정책 전문가다. 영국 애버딘대학에서 사회정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연금연구센터 연구심의위원회, 중앙근로자 복지정책위원회, 노사정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저서로 국민연금의 역설을 짚고 해결책을 제시한 『낙타와 국민연금』 등이 있다.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를 문자 그대로 볼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내년에 증세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5월부터 2개월간 국민행복연금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기초연금 공약의 실천 과정을 조언했던 김상균(67·사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27일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지하경제 양성화와 조세 개혁 등 선결과제를 단계별로 푼 뒤 증세를 단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정부가 기초연금 공약을 축소한 건 현재 여건에서 최선의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연금 축소에 대해 사과했다. 적절했다고 보나.
  “단순한 사과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런데 사과하는 자리에서 또 약속을 해 복지공약이 임기 내에 다 이뤄질 것이란 기대를 만든 건 이해하기 힘들다. 선의로 해석하면 자신 있으니까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약속도 못 지키면 신뢰가 더욱 떨어지는 부담을 안게 된다.”

 -기초연금 축소방안을 어떻게 평가하나.
 “긍정·부정의 양면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의 2028년 목표치를 조기 달성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편집자 주:현행 기초노령연금은 월 9만6800원씩 지급된다. 2007년 연금 개혁 당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낮추면서 노후 안정을 위해 기초노령연금을 점진 인상해 2028년엔 2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또 45%에 달하는 노인 빈곤율을 일시에 6~7%포인트 낮추는 효과도 있다. 장기적으로 재정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도 평가할 대목이다. 부정적인 면은 차등 지급으로 불만을 느끼는 국민이 생겨났고 정부 신뢰가 추락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기초연금 지급액이 줄어든다. 성실한 가입자들이 차별받는다는 비판이 있다.
 “기초연금·국민연금 모두 노후소득 보장 수단이다. 돈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보다 연금액이 충분하냐가 중요하다. 현재의 청년세대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5년을 넘기면 매년 연금 수령액이 다달이 약 1만원 늘어난다. 반면 기초연금은 7000원가량 줄어든다. 총액으론 3000원 늘어나는 거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직접 부은 돈인데.
 “국민연금은 내 돈이고 기초연금은 국가 돈인가. 국민연금을 내가 냈지만 국가가 모아서 불렸다. 현재 400조원가량 국민연금이 쌓였다. 그중 3분의 2는 국가가 만든 돈이다. 국민연금을 가입자의 돈이라고 하는 건 과장이다.”

 -당초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을 계획했다. 그런데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반발하니 어정쩡하게 타협한 것처럼 보인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반발이 강력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국민행복연금위원회를 만들어 지금의 타협안을 낸 거다. 현재 여건상 최선이다. 하지만 영원히 최선은 아니다. 두 연금을 최소 5년에 한 번씩, 상황에 맞게끔 수정하기 위한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

 -그 과정이 정쟁 수단으로 이용돼 온 것 아닌가.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내놓고 번복하는 게 되풀이돼 왔다.
 “앞으로 5~10년은 공적연금이 정쟁에 이용당할 위험이 있다. 그 단계를 넘겨 정쟁 도구로서의 가치가 사라지면 전문가에게 공이 넘어온다. 이는 국민연금 역사가 70년을 넘은 선진국들도 다 겪은 과정이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사회인 만큼 선진국보다 일찍 그런 단계에 이를 전망이다.”

 -이번 조치 뒤 ‘국민연금을 탈퇴하고 사보험으로 갈아타겠다’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최악의 판단이다. 갈아타는 이유는 더 받기 위해서 아닌가. 그런데 사보험으로 가면 더 못 받는다. 공보험의 수익률이 최대 2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만히 앉아서 강제로 걷는 공보험은 운영비가 적게 든다. 이익을 챙기지도 않는다. 반면 금융업체가 이익을 챙겨야 하는 사보험은 수익률에 한계가 있다. 공보험이 밉다고 사보험으로 가는 건 잘못된 선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중요하다는 견해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복지 지출 비율이 21.7%인 반면 우리는 10%를 넘지 않는다.
  “OECD 중위 수준이 될 때까지 열심히 복지 투자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복지비 지출 증가율이 전체 예산 증가율을 넘기 시작한 지 15년 됐다. 그래도 OECD 중위권 수준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에 지출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출을 더 늘려야 하는 거 아닌가.
  “GDP 대비 지출 비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지출 증가 속도다. 최근 몇 년간 증가 속도는 우리가 OECD 국가 중 최상위 수준이다. 속도 조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또 고려할 게 투자 우선순위다. 한꺼번에 모든 걸 이룰 순 없다. 최근 복지에 과부하가 걸린 건 여러 가지 복지정책이 우후죽순 실시된 탓도 크다. 무상급식 하다가, 반값 등록금 하다가 갈팡질팡이다. 우선순위 선정에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노무현정부 때 복지 투자의 장기계획인 ‘비전 2030’을 마련했지만 정부가 바뀌니까 계획도 사라졌다. 지속가능한 장기 계획이 절실하다.”

 -복지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해야 하나.
 “새누리당의 현재 당론이 생애주기별 맞춤 복지다. 사회복지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 이론이다. 국민의 생애주기별로, 이를테면 청년기는 반값 등록금, 부모세대는 무상보육. 노년층은 기초연금 식으로 국가가 책임질 서비스가 있다. 어느 하나의 주기만 우선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기초연금 외에 다른 복지공약들도 축소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경제를 이길 복지는 없다. 아무리 복지를 하고 싶어도 재원이 없으면 중단하거나 줄여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빚내서 복지를 하면 나중에 복지를 회복시킬 수 없다. 정부가 신중한 복지를 하다가 경제가 좋아지면 과감히 투자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져주는 게 필요하다.”

 -애당초 박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 과도했던 건 아닌가.
 “선거가 과도한 복지 공약을 만들어 내는 현상은 복지국가 초기에 흔히 나타난다. 박 대통령만 비난하는 건 불공평하다. 그 점에선 야당 후보도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복지국가 성숙기에 접어들면 거품은 수그러든다. 따라서 인내심을 갖고 정치인들을 격려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이 말한 ‘증세 없는 복지’는 과연 불가능할까.
 “증세와 사회보험료 인상 없이 복지국가는 지속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증세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문자 그대로 증세를 안 하겠다는 뜻이 아닐 거라는 게 내 해석이다. ‘증세 없는 복지’엔 숨은 뜻이 있을 거다. 복지를 늘리기 위해선 세금과 보험료를 늘려야 한다는 걸 박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숨은 뜻이 뭘까.
 “증세를 하려면 선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예컨대 지하경제나 공공부문 낭비 문제를 푸는 거다. 이런 것들을 해결한 뒤 증세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박 대통령은 이걸 해 보겠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증세부터 언급하면 선결과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증세를 안 하겠다고 하면서 지하경제를 잡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뒤 타이밍이 되면 증세를 언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 타이밍이 언제인가.
 “선결 문제가 해결된다고 곧바로 증세로 못 간다. 조세 개혁이 다음 단계로 필요하다. 담세자 범위 확대와 불필요한 감·면세 철폐, 추가 세원 발굴 등의 개혁을 해야 증세로 갈 수 있다. 증세가 3단계라면 조세 개혁이 2단계, 지금은 1단계다. 1·2단계가 어느 정도 됐을 때 홀가분하게 증세할 수 있다.”

 -그게 언제쯤이라고 보나.
 “임기 5년 중 대통령이 뜻을 관철할 수 있는 기간은 2년뿐이다. 늦어도 내년 하반기엔 증세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관련기사
▶ 靑 "국민연금 재정, 기초연금에 안써"…갈등설엔 '함구'
▶ "쇼라는 비판 들어도…" 박 대통령, 때마다 시장 찾는 이유가
▶ 전문가 셋 중 둘은 "기초연금 축소는 잘한 결정"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