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시인>|산골 외딴집의 고 요한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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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나는「크리스마스」라면 경주시에서 서쪽으로 8km 떨어진 모양리 라는 가난한 마을이 생각난다.
모양 리는 신라 시대 김유신 장군이 수도를 했다는 전설이 있는 단 석산 기슭의 마을이다. 그곳에서 나는 소년 시절을 보냈다.
내가 국민학교 5학년에 그 마을에 개척 교회가 섰다. 예수 님이 탄생했다는 마구간보다 더 허름한 농가의 방한간을 빌어 20∼30명의 교인이 모였고 나도 그 중의 하나이었다. 그 초가집 텃밭에 나지막한 종대를 세워 종을 달아 놓은 것이 교회다운 인상을 주었다.
그해「크리스마스」, 모든 장식을 소년 신도인 우리들이 맡았다.「램프」를 켜 놓고 축하 예배를 보는 강대 상 뒷벽에는「크레용」으로 그린 예수탄생의 광경이 걸려 있었다.
물론 내가 그린 것이다. 그리고 수박 초롱대신 십자가를 그린 종이 초롱을 준비하여 밤을 새워 새벽 송을 부르러 다녔다. 외진 산길을 명주 수건으로 귀를 감싼 교인들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며 산골짜기 외딴 집을 찾아갔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소박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소박한「크리스마스」로 나의 신앙은 뿌리가 내리고 자라게 되었다. 또 그 소박한 바탕 위에 움튼 나의 신앙인 만큼 무조건의 신앙심과 진실을 평생토록 마음 밑바닥에 간직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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