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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문화재 보존과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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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화재의 관리 및 보존사업은 금년 과학적 처리라는 좌초의 커다란 테마를 놓고 벅찬 시련을 겪었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재기되고 시행된 이 문화재 보존과학의 문제는 오늘의 고고학이 과학에의 의존도가 높아졌고 특히 유물의 보존에는 과학의 힘을 빌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적인 요청에 의한 것이다. 우리 나라 문화재보수에 있어 자연과학자의 참여는 물론 경주 석굴암의 해체·복원 공사부터 시작하여 일부 과학자들 사이에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부각됐다. 그리고 의류와 지류에 관해서도 약간의 실험을 했고, 선사시대의 유적에서 나온 숯에 대한 카본·데이팅은 비록 외국에 의존한 것이라 하더라도 일반인이 고고학과 과학을 보다 밀접히 생각케 하는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 막 눈을 떴을 따름인 보존과학은 이 방면의 산적한 유물들에 감히 손을 못 뻗치고 있다. 서역회화작품, 무위 사 벽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다 삭아 가는 철기·동기·목기·지류 등에 대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형편이다.
특히 우리 나라에는 전국 각지에 우호 문화재가 무수히 흩어져 있는데 개중에는 1전년 이상 된 고 품이라서 이미 파손됐거나 파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금년에 서두르게 된 것이「중요 석조 문화재의 과학적 진단과 처리계획」이요, 그 1차 적 대상이 된 중요 문화재가 석굴암·다보탑·석가탑·첨성대 등 경주에 있는 신라 때의 국보 미술품이다. 문화재관리국은 이 보존과학의 문제를 문화재 위원회나 혹은 자체 기구로선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 위촉하여 지난여름 조사실험을 베풀었다. 또 9월에는 이 방면의 세계적 권위인 국제 문화재 보존 조사 연구소장「플렌덜리드」박사를 초빙해 세부에 걸친 조언을 받기도 했다.
과 기연(KIST)의 처방과 플렌덜리드 박사의 조언사이에는 공통된 견해도 없지 않지만, 반면에 이견도 없지 않다. 우선 과 기연이 과감하고 적극적인 방안을 낸데 비하여 플렌덜리드 박사는 조심스럽고 실험적인 과제를 제시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들 양자는 그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공통된 갭을 가지고 있다. 외국의 전문가는 한국의 문화재에 익숙지 못할뿐더러 우리 석조 문화재의 주재료인 화강암을 다룬 경험이 없다는 것이요, 또 과 기연이 구성한 조사반은 대부분 과거에 문화재를 다뤄본 적이 없다는 핸디캡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국내 실정이기 때문에 플렌덜리드 박사는 보존과학이 지녀야할 자세- 즉 충분한 시간과 경비와 연구로써 신중히 취급할 것을 거듭 당부하고 떠났다.
그럼에도 문화재 관리국은 11월초에 갑자기 과 기연이 일임하여 이들 국보 문화재의 세척 작업을 착수했다. 따라서 관계학계에서는 문화재를 모르는 과 기연의 실험 대상으로 1천2백년의 국보를 내 맡겼다는 점에서 훼손을 우려했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과 기연의 시공 결과에 대하여 별다른 과오가 지적된 바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국내에서 그 공사 결과에 대하여 평가할 전문가도 따로 없다.
과 기연의 최형섭 소장은『자신을 갖고 한 것은 아니지만 문화재 보존에 협조하고 개발하는 마음에서 관리국의 요구에 응한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다른 석조물에 충분한 실험을 가진 뒤 이들 국보에 손댔더라면 다른 과학계 인사도 별 이의가 없었을 것이다. 또 시기적으로도 성급한 것이었음을 관계당국은 시인하고 있다.
결국 덤비다가 오히려 물의를 일으키고 만 문화재 보존 과학의 문제는『외부효과와 공리주의적인 문화재정책의 본보기를 드러낸 것』이라고 한 관계 전문가는 지적한다. 그는 또 국보의 세척작업을 통하여 문화재 위원회의 무능과 기능마비를 더 주시한다고 말한다.
즉 다보탑과 석굴암의 세척공사 승인과정에서 문화재위원회는 회의도 갖지 않은 채 서면 날인했었다. 심지어 이 이선근 위원장까지도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말한바 있는데, 이는 곧 위원회가 형식상의 자문 기관으로 전락했음을 입증해 준다.
한 문화재 위원은 위원회의 무용론을 펴면서 문화재 정책의 위기를 강조한다.
『문화재관리국이 저질러 놓은 일의 책임이나 욕을 뒤집어쓰는 자문기관이라면 학자적 양심으로 전원 사퇴해야 마땅하다』는 지론이다.
일부 위원들은 현실적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중요한 일의 결정 장에 참여치 않음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는 소극적인 행위는 위원회의 권위를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가 될 밖에 없다. 1급의 국보를 보수함에 있어 아무런 토의도 갖지 않은 채 서면 결의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모처럼 만에 싹 튼 우리 나라의 문화재 보존과학은 어떤 효율적 방향도 모색하지 못하고 과학계와 미술사학계에 커다란 잡음만 일으키고 말았다. 세척작업의 시공단장 양재현 박사는 다시는 문화재에 손댈 생각이 없다는 다짐이고, 문화재 위원들 사이에는 위원회의 자폭 논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다 보면 성급하게 떠들썩했던 보존과학의 문제는 문화재를 아끼는 각계 전문가와 기술진을 도리어 경원시켜 버리지나 않을까.
문화재관리국은 금년의 소용돌이로 말미암아 앞으로 더욱 큰 난제에 부딪칠 것이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해소하는 지름길은 공사만 서두를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다방면의 인재를 양성하고 확보하는 것 밖에 없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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