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문학상 심사평] 카레향과 함께 다가온 신산한 청춘 … 이것은 신대륙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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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13년 황순원문학상 본심은 ‘1990년대의 귀환’이라고 할 만하다. 본심 대상작 열 편 가운데 다섯 편이 1990년대 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마지막까지 집중 거론된 작품들 역시 조해진의 ‘빛의 호위’를 제외하면, 대부분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었다. 권여선의 ‘봄밤’과 은희경의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그리고 하성란의 ‘카레 온 더 보더’ 등이 그러하다.

 조해진의 ‘빛의 호위’는 신진작가로서는 드물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형식적 완성도로나 주제의 보편성으로나 놀라운 작품임에 틀림 없다. 이 작가의 다음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정착하지 않으면 안 됐던 모자의 외로운 생존기를 그리고 있는 은희경의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역시 은희경 특유의 삶에 대한 우수가 매력적이었다. 다만 그녀의 쌓아온 성취를 넘어서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권여선의 ‘봄밤’은 끝까지 수상작을 놓고 경합을 벌였다.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죽어가는 수환과 알코올중독자 영경의 사랑을 가슴 절절하게 그리고 있는 ‘봄밤’은 그 자체 엄청난 몰입력을 자랑한다. 권여선은 이를 통해 계급으로 해명되지 않는 인간 실존의 또 다른 영역을 탐사하고 있음을 알겠다. 그러나 이 운명애가 삶의 구체성을 획득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하성란의 ‘카레 온 더 보더’가 결국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를 얻게 된 것은 삶의 세목에 대한 꼼꼼한 관심 탓이 크다. 하성란은 퓨전 카레 식당의 ‘카레’향을 매개로 과거의 친구 ‘영은’을 회상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속한 세계가 어디인지 그 ‘경계선 긋기’에 돌입하게 되는 한 여자의 정체성 탐색 과정을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재현한다. 이로써 우리는 카레향과 더불어 ‘영은이들’로 대변되는 그 주변인의 세계, 그들의 언어, 그 가난, 그 비루함, 그 신산한 청춘을 영원히 기억하게 됐다. 그것은 신대륙의 발견에 버금간다. 그 행운을 축하한다.

◆ 심사위원=구효서·신수정·우찬제·이혜경·최원식(대표집필 신수정)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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