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개인회생 신청 ‘사상 최대’에 주목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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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호 02면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해 파탄에 직면한 채권자들이 주로 찾는 개인회생제의 신청자 수가 올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할 전망이다. 금융권과 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개인회생 신청자 수는 6만1446명으로 1년 전보다 16.3%나 늘었다. 개인회생 신청자는 2010년 4만6972명을 기록한 이후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2011년 6만5171명, 2012년 9만378명으로 계속 느는 추세다. 이대로 가면 올해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울 것 같다.

‘부채를 탕감해 달라’며 법원에 신청하는 개인회생제는 신용불량자들의 채무를 줄여주는 개인워크아웃 제도와 함께 빚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이들을 구제해주는 마지막 사회안전망이다. 개인회생제를 찾는 사람이 급증한 것은 그만큼 민생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해외 언론과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잇따라 한국 경제를 호평했던 것을 무색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의 배경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계부채가 있다. 국내 가계부채(가계신용 총량)는 지난 2분기에 사상 최고 수준인 980조원으로 급증했다. 가구당 평균 5654만원 꼴이다. 게다가 가계부채 규모가 이미 가처분 소득의 1.36배를 넘어서서 빚 갚을 능력을 아예 상실한 이들도 적지 않다. 물가상승률에다 실업률을 더해 국민들의 생활고를 말해주는 이른바 ‘경제불행지수’에 이젠 금융부채 연체율도 넣어야 할 판이다. 우리 경제의 큰 축이었던 베이비 부머들이 조기 퇴직 이후 대책 없이 자영업으로만 몰리는 현상도 가계부채란 난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가게를 차리느라 큰 빚을 냈지만 불황의 덫에 걸려 이를 제대로 갚지 못한 채 폐업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어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지난 7월 국회에서 “현재의 가계부채는 아직 위기상황이 아니다”고 답변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세제 개편이니 창업 활성화니 굵직굵직한 대책들이 쏟아졌지만 가계부채 문제를 완화하려는 로드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서민 부채 경감을 위해 의욕적으로 설립한 국민행복기금만 해도 그 규모가 당초 18조원에서 8000억원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8·28 부동산 대책은 주택매입자금이나 전세금을 금융 대출로 해결하겠다는 식이어서 오히려 빚 내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부채 대책과 관련해선 신용복지위·국민행복기금·미소금융 등으로 나뉘어 있는 서민금융기관의 통합을 하루빨리 추진해 종합대책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 부실 부채를 전담해 처리할 ‘배드 뱅크’의 설립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도덕적 해이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정교하고 세밀하게 지원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계의 재무 건전성이 유지돼야 국가 경제도 건전해진다. 경제 부처와 정치권은 개인회생 신청 건수의 급증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이제라도 정쟁을 그치고 서민 경제를 보듬어 줄 방안을 찾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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