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겸장」의 포석|중공의 대일 접근|독·소 조약에 심리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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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공수상 주은래는 북평을 친선방문한 일본사회당위원장 「나리따」(성전)를 통해 『양국의 외교관계가 수립되는 대로』 일-중공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겠다고 말했다. 미-일 안보조약의 자동연장이래 『군국주의의 부활』등 신경질적인 비난만 일삼아오던 중공이 이처럼 태도를 돌변한 것은 국교정상화나 조약체결의 성패를 떠나 그 자체가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중공이 얼굴을 표변시키게 된 「배경」과 이 제안이 불러일으킬 동북아 및 일본국내 정치에서의 「영향」이 제각금 「깊은 주름살」을 갖기 때문이다.
중공이 별안간 적극적인 대일 접근자세를 취하게된 저변에는 대체로 3가지의 이유가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독-소 불가침조약이 안겨준 대소대결에서의 심리적 부담감, 「캐나다」와의 국교수립이후 밝은 전망을 보이고 있는 『평화적 정치대국화』에의 가능성, 일본이 가상적국이 되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일본의 급속한 군사열 강화의 지연 등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이와 같은 「현안문제」의 돌파구를 『불가침조약을 「보너스」로 한』 대일 국교정상화에서 찾아보려는 속셈이다.
중공은 지난 8월에 조인된 독·소 불가침조약을 『현실적 위협의 증가』로 해석해왔다. 미국을 제쳐놓고 생각할 때 「게르만」민족과의 화해는 소련의 『전통적 고민거리』인 동서양면전쟁의 위협을 제거했다는 의미이기 때문. 전 국방력의 40% (69년 6월 현재)를 집중시키고있는 중공과 「미사일」부대까지 배치한 소련간의 대치상태는 지난해 10월 북평에서 협상「테이블」을 마련한 뒤에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소련이 『동쪽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 (독·소 조약)를 마련한 것은 중공에 커다란 부담감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양변이 서로를 『제1의 가상적국』으로 규정한 이상 소련이 제2의 가상적인 「게르만」민족과 화해한 것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중공 역시 같은 종류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풀이이다.
이와 같은 배경 위에서 중공의 대일 접근을 더욱 촉진한 것은 일본의 급속한 군사열 강화 경향이었다. GNP에 있어서 아시아 기타지역의 총화보다도 더 많은 일본은 최근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군비확장에 나선 것이 사실이다. 중공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이 내년부터 시작되는 제4차 방위계획에 무려 1백 6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결정한 사실은 『허리 옆의 비수가 점점 다가오는 것』과 같이 비쳤을 것이다.
일본의 이와 같은 움직임을 『군국주의의 부활』이라고 비난해 오던 중공이 갑자기 태도를 부드럽게 한 것은 일본의 군비확장명분이 주로 『중공의 호전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역용 하려는 개략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통상확대와 불가침조약으로 『호전적 가상적국』이라는 의식을 둔화시켜 군비확장의 명분을 없이하고 소련이 서쪽의 근심을 덜었듯이 중공도 동쪽의 근심을 덜자는 「양수겸장」의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그밖에 중공의 대일 접근에 촉매역할을 한 것은 69년 4월의 구전대회이후 성공적으로 추진중인 『대 외교 공세』라 하겠다. 지난여름 모택동의 이른바 『접견외교』를 「피크」로 공산제국과의 관계정상화를 마무리 지은 중공은 캐나다와의 국교수립 (10월 13일)으로 새로운 국면에 나섰던 것이다.
「이탈리아」 「벨기에」등과 거의 타결간계에 있는 서방국가와의 『폭넓은 접촉』이 만약 『유엔진출을 노리는 것』이라면 일본과의 관개정상화도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중공 국교수립이 불가침조약의 체결로 번질 경우 한국과 자유중국의 입장은 상당히 미묘해질 것으로 보이나 일본의 국내정치는 이 문제의 논의자체만으로도 큰 진통을 겪게 될 것 같다.
특히 중공문제를 둘러싼 자중지란이 이미 현재화하고 있는 자민당 측의 고민은 상당히 심각한 것 같다. 즉「캐나다」의 중공승인 직후, 「우쓰노미야」(자궁)「후지야마」(등산) 등 당내의 좌파의인들이 사.·공명·민주당 등과 손을 잡고 「일-중공 국교회복 의원연맹」을 조직한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움직임은 당 집행부와는 사전상의도 하지 않은 일종의 「반란행위」였다.
「사또」 4선에 도전했던 「미끼」마저 『현지도체제로는 국교수립이 불가능』함을 내세워 은근히 측면지원을 보내고 있어 주은래의 제안이 정식으로 논의되면 상당한 풍파를 겪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중공의 세계전략이 갖는 미묘한 입장 일본사회당의 국내전략이 접선을 그은 『국교회복 및 불가침조약』의 논의는 양국과 그 인접 지역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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