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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대상이 된 국보| 광주 세 문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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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화재관리국은 석굴암·다보탑·석가탑 등 경주에 있는 국보지정 문화재에 대하여 돌연 보존공사를 착수함으로써 문화재 행정상 중대한 문젯점을 제기했다. 관리국은 문화재를 보수한 경험이 없는 과학기술연구소(KIST)에 이 공사를 일임하고 있을 뿐더러 구체적 공사 시방서조차 제출되지 않은 채 서둘러 착공, 신중해야 할 문화재보존업무에 난맥상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문화재관리국은 10월30일 과학기술연구소 양재현 화학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중요 석조 문화재 보수 시공단을 경주에 파견했다. 거의 대부분을 과학자로 구성한 11명의 이 시공단은 석굴암(국보24호)다보탑(국보20호)석가탑(국보21호)등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아끼는 3점의 국보에 대하여 15일 동안에 더럽혀진 때를 깨끗이 닦아내고 물구멍을 뚫으며 보존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제반공사를 시행한다. 총 공사비는 3백83만원이다.
지난9월 국제문화재보존조사연구소장 「플렌덜리드」 박사의 내한과 더불어 급 피치를 올리고 있는 이 국보 석조물의 보존문제는 이로써 그가 몇 마디 조언을 남기고 떠난 지 불과 한달 만에 보수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오는 10일까지 보름동안 실시하는 제1차 시공단의 작업내용은 주로 다보탑에 치중하여 ①2백55개의 탑재에서 더럽혀진 이끼·흙·잡초·먹 글씨 등을 씻어내고 ②석재에 원래 있는 배수구를 뚫고 ③갈아 끼울 석재를 검토한다. 그밖에 석가탑은 씻는 작업과 해체를 위한 기초조사를 하고 석굴암에 대해서는 오염제거 및 벽면온도 조절과 관람객에 의한 피해 등을 조사한다. 문화재관리국은 이공사의 용역과 기술책임을 과학기술연구소에 일임하고 다만 현장 감독으로 국내 김정기 연구실장을 파견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관리국은 우리 나라 최대의 국보에 대한 이번 공사를 통하여 몇 가지 정책상의 헛점을 제시하고 있다. 작업 그 자체보다는 이같이 중요한 문화재를 보수하는데 있어서까지 졸속과 무 기준 맹점을 여실히 드러내 보인 것이다. 따라서 중요 국보를 몇몇 과학자들의 보험도구로 내맡겼다는 빈축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도리어 훼손하는 보수공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재 관계 인사들 사이에 지적되고 있는 문젯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공사의 용역·기술책임을 전권 위임받은 과학기술연구소가 과연 그 공사를 할만한 실력이 있느냐 하는 의문점이다.
과기연은 과학적인 보존을 위해 어드바이스를 할 수는 있어도 시공자가 될 만큼 공사기능 자를 갖고있는 기관이 아니다. 과기연이 이 공사를 위해 구성한 멤버는 단장에 양재현 과학부장을 비롯하여 김형만(조화) 이경서(제황) 문탁진(세척) 김연철(기중) 강일구(물리) 장화진(제도·이상 자체연구원) 김원조(암석·지질연) 김효경(기계·서울공대)제씨와 고증에 진흥섭 문화재위원이 참가하고 있을 뿐이다. 즉 시공단원의 거의 전부가 문화재보수공사를 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과학자들인 것이다.
이같이 문화재보수에 생소한 과기연은 그 중요한 공사를 맡을만한 공인을 갖고있지 못하며, 만약 불의의 손상을 입힌다 하더라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래서 1천2백년의 신라유물을 이 시공단의 실험재료로 제공한 꼴이 되지 않느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둘째, 보수대상 국보의 중요성에 비하여 세부 시방서도 없는 공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재관리국이 알고있는 공사내용이란『오염 제거를 위한 세척』『배수구의 원상 복원』 등 기초적이고 추상적인 말뿐이다. 씻는 약품과 배합을, 기재의 내용과 시행방법 등 구체적인 내용이 아무 것도 제시되지 않은 것이다.
관리국은『물을 가급적이면 적게 써서 세척한다』고 하지만 그런 막연한 시공방침이야말로 국보를 가해할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특히 양 단장은 공사현장에서 묵적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과거에 실험조차 없었고 아직도 방안이 강구되지 않은 먹물제거란 당초부터 무모한 계획임을 입증한다. 바꿔 말하면 영구 보존할 유물에 실험약물을 쏟아 붓겠다는 말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과기연은 지난 9월 『다보탑의 과학적 보존에 관한 연구』라는 조그만 보고서를 간행한바있다.
그것은 장기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금년 봄과 여름에 걸쳐 약 보름동안의 조사에 의했을 따름이다. 그것이 문화재를 처음 다루는 조사이기 때문에 실측도마저 틀려 한때물의를 일으킨바 있다. 만약 과기연이 시공한다 하더라도 충분한 연구가 있은 후에 딴 유물에 실험적 작업을 하고, 그 경험에 의거하여 국보보수를 착수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다.
셋째, 공사시기가 부적당하고 굳이 연내에 처리하려는 이유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1천2백년을 지탱해온 유물이요, 다보탑과 석가탑이 1,2년 사이에 도괴 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플렌덜리드」박사가 거듭 당부한 말도『문화재 보수는 시간과 돈의 제약을 받지 않아야 한다』 는 것이었다.
또 그는 보존과학의 방법이란 확실한 결론이 없으며 서구에서의 대리석유물에 대한 적용결과를 예시했을 뿐, 우리 나라 화강암의 경우에 대해서는 특별한 조언이 없었다.
시공자인 과기연은 금년에 비로소 문화재에 관심을 돌리고 있을 따름이지 어떤 조사 데이터와 자신 있는 실험결과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문화재의 영구 보존 책은 즉흥적인 임기응변으로 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또 관리국은 내년 봄에 석가탑을 해체, 복원공사를 하겠다고 밝히고있다. 관리국은 「플렌덜리드」박사의 말을 따르는 것이라고 이유를 대지만 그는 『만일 공사할 적엔 지반을 바로잡는 게 좋겠다』고 했을 뿐이며, 그 정도로 보수가 시급하다면 전국의 다른 모든 석탑들은 더 시각을 다투는 위험 상태라 할 수 있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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