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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 위장합작 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최근 한국 영화계에는 불황 타개책의 하나로 합작영화란 것이 성행하고 있다.
합작영화는 상호간의 기술교류와 한국영화의 해외진출 등을 위해서라도 마땅히 권장되어야할 것이지만 요즘의 합작 중에는 순 장삿속만의 위장합작이 많다는 데에 문젯점이 있다.
합작영화를 만들면 우선 외화 「코터」 없이도 외화를 들여와 상영한 것과 같은 흥행성적을 올릴 수 있다. 또 방화라면 당연히 검열에서 가위질 당할 「신」도 외화거나 합작영화일 때는 검열을 그대로 통과하고 있다. 이러한 잇점 등으로 해서 일부 제작자들은 법의 맹점을 악용, 몇몇 조연급 배우만 출연시키고 합작이라는 이름을 빌어 실속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요즘 상영되고 있는 『아랑곡의 혈투』 『13인의 무사』 등이 이러한 예다. 이 영화들은 한국배우가 단역으로 얼굴만 비췄을 뿐이지 완전히 잔혹한 중국식 검술영화일 뿐이다.
여기에다 합작영화 등 외화가 좀 인기를 끌자 서울의 11개 개봉극장 중 국도를 뺀 10개 극장이 모두 현재 외화를 상영중이거나 곧 외화를 상영키로 하고있어 이제방화는 극장을 잃어버리게 된 셈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보다 한국영화가 저질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저질영화를 만든 방화 제작계에 그 책임이 있다. 또 주무당국의 근본적인 영화정책의 「미스」와 영리만을 추구하는 극장측에도 책임이 있다.
영협도 이에 22일 문공부에 위장합작 방지책과 방화 육성대책을 촉구하는 건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여하간 이제 제작자는 영화를 만들면 밑질 뿐이고 외화를 수입하자면 싯가 8백만원의 값비싼 「코터」가 필요하므로 자연 손쉬운 합작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많아졌다.
위장합작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최근 촬영중인 한미합작영화 『서울의 정사』도 결코 바람직한 합작영화는 못된다. 합작조건에 일정한 규정은 없지만 대체로 작품 테마가 양국에 연관성이 있어야하고 공동투자와 「시나리오」·감독·주연 등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 영화는 최초의 한미합작이란 점에서 주목을 끌었지만 처음의 기대에는 못미치고있다. 『「호텔」비용이나 대주고 「엑스트러」 등을 조달해주는 정도가 외국영화의 「로케」를 시중들어 주는 것뿐이지 어떻게 합작이냐』고 과격하게 말하는 영화인들도 있다.
합작조건을 보면 한국 측이 상당액의 제작비를 투자하고 있으나 「시나리오」·감독·촬영·주연 등은 모두 미국 측이고 한국배우로는 신영균 최지희 등이 조연으로, 그밖에 「엑스트러」가 약간 출연할 뿐이다.
작품도 「말론·브란돈」가 주연했던 미일 합작영화 『팔월 십오야의 찻집』(56년), 『사요나라』(57년) 등과 비교해보면 『서울의 정사』는 서울이 무대가 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황당무계한 007스타일의 액션물일 뿐이다.
작품내용은 예륜이 세 차례에 걸쳐 개작을 지시했지만 개작된 「시나리오」대로 촬영을 하느냐가 문제.
이 영화에 한국 측 공동감독으로 선정되었던 신인 하길종씨는 「데이비드·리치」감독 등 미국 측 「스탭」과의 작품상 대립과 한국 측 「스탭」을 완전히 무시한 그들의 독주에 분개해 촬영 닷새만에 철수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배우도 처음 오기로 했던 「트로이·도나휴」 「낸시·쾅」 등은 오지 않고 사양의 「글래머·스타 」「애니터·에크버그」 등으로만 그쳤다.
이밖에 현재 추진중인 합작만도 한·이, 한·중 등 10여편을 헤아리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러한 인기 없는 배우를 데려다 장사속만을 노린 주체성 없는 합작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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