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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에 건 수사 두 미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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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살인을 비롯, 강력 사건을 푸는 경찰의 수사력이 고작 주변인물에 승부를 거는 요행수의 단계를 못 벗어나고 있다.
다행히 주변인물 속에 실마리가 도사리고 있으면 사건은 쉽게 해결의 빛을 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수사는 두 손을 들고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마련, 그러나 경찰은 안이하게 주변 관계만 외곬으로 쫓다가 종내 허탕을 치기 일쑤이다.
김포가도의 여운전사 이계숙양(27) 피살사건과 서울 성동구 송정동 중랑천 둑 위의 여양복공 홍경숙양(18) 난행피살사건 등 미궁에 빠진 두 여인피살사건이 바로 주변인물만 쫓다 그르친 예.
각각 사건발생 1개월과 20일을 넘겼지만 경찰은 모두 허탕을 치고 실마리 하나 없는 빈손으로 미제화의 문턱에 들어섰다.
먼저 여양복공 홍양은 지난달 22일 아침 중랑천 둑 풀밭에서 하의가 벗겨진 채 목 졸린 변시체로 발견됐다.
홍양은 전북 장수군 산서면 동학리 출신으로 2년전 상경, 시내 문래동 국제라사·전농동 한성라사 등 8개의 양복점을 전전했으나 끝내 자립이 안 되자 피살되기 4일전인 지난달 18일 마지막으로 다니던 마포구 대흥동 성림라사를 그만두고 성동구 하왕십리 맥주집 럭키·홀과 중구 을지로2가 초남홀에 가수로 취직하러 다니다 비명에 간 것.
경찰은 범인이 홍양을 겁탈하려다 끝내 반항하자 목 졸라 죽인 치정사건으로 보고, 처음부터 수사의 방향을 면식범으로 잡았다.
홍양이 여러 양복점을 다녔고 최근엔 비어·홀로 나선 점으로 미루어 남자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으로 단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양의 남자관계만 드러나면 사건은 곳 풀릴 것으로 보고 경찰은 홍양의 행적을 추적, 지면인 남자들을 샅샅이 훑는데 전수사력을 모았다.
이에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것이 ⓛ홍양을 짝사랑, 일기장에 『죽이고 싶다』고 쓴 홍양의 국민교 2년 선배인 양모군(20·중구 을지로2가 S연탄 직매소) ②밴드·테스트에서 떨어뜨려 놓고 죽기 전날 밤 다시 만나기로 한 럭키·홀 상무 김모씨(30) ③18일 밤 밴드·매스터라고 사칭, 홍양을 여관으로 유인한 초남홀 웨이터 보조 김모씨(23) 등 3명. 수사 20일은 이들 3명을 차례로 용의선상에 올려 자백을 강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추정한 피살시간인 22일 0시전 후에 친구들과 술을 마셨거나 홀에 있은 것으로 알리바이가 성립, 수사는 곤두박질을 쳐 원점으로 돌아가고 오히려 고문이란 부작용만 남겼다.
한편 경찰이 지면남자 색출에만 집착하는 바람에 홍양이 집을 나서며 차고 나간 오리엔트 팔목시계(3천5백원짜리) 수사와 홍양의 하루일과중 미지수인 4∼5시간의 공백추적 등 기초적인 수사는 완전히 뒷전이었다.
홍양은 평소 양복점 출근시간이 하오 2시인데도 상오 9∼10시면 집(성동구 약수동 산37)을 나가 그 사이 4∼5시간의 공백이 있었던 것.
경찰은 처음 팔목시계는 고물이라 범인이 가져 갔을리 없다는 일방적인 단정아래 장물수사는 아예 무시했던 것.
이렇듯 그 동안의 외골수사가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경찰은 뒤늦게 시계의 장물품 표를 돌리는 한편, 홍양이 오전시간에 음악학원 등에 다녔을 것으로 보고 학원탐문수사에 착수, 제3의 인물등장을 기대하고 있으나 막연한 형편이다.
한편 김포 여운전사 이양(27)사건 수사도 마찬가지의 허탕 코스였다.
이양은 지난달 12일 아침 자신이 몰던 서울 영2-694호 택시 뒷좌석에서 혁대로 목을 졸리고 돌멩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타살체로 발견됐다.
사망 추정시간은 비가 억수같이 퍼부은 전날 밤 7시∼8시쯤.
경찰은 돈주머니가 텅 비어 있으나 팔목시계가 그대로 있고 블라우스 안주머니에 현금 4천원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이 밝혀지자 수사의 방향을 강도살인 보다는 치정살인으로 돌렸다.
특히 이혼경험이 있고 운전사 등 4∼5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죽은 이양의 사생활은 경찰의 원한 살인심증을 굳혀주었다.
경찰은 곧 이씨 주변의 인물을 더듬어 무려 1백여명을 수사선상에 올렸으나 10일만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모두 알리바이가 성립된 것이다. 경찰은 다시 수사를 원점으로 돌려 요금관계로 싸우다 빚은 우발적 범행, 또는 2인조 이상의 계획적인 강도살인으로 풀기 시작했다.
뒤늦게 고촌·김포공항 일대의 우범자 2백여명의 알리바이를 캐는 한편 사건전후 행방이 없는 4∼5명의 소재 수사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이 역시 공전.
도대체 사건발생 1개월이 지났지만 경찰은 치정살인과 강도살인의 양 갈래를 왔다 같다, 사건 성격마저 판가름 짓지 못하는 형편이다.
다행히 『범인이 다른 사건으로 걸려드는 기적이 없는 한 풀리기 힘든 상태』라는 것이 수사진의 솔직한 고백이다.
아뭏든 두 사건 모두 주변인물에만 매달리다 손을 든 경우로 주변인물 속에 범인이 없을 경우 경찰은 속수무책이라는 수사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었다. <김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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