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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제니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파스네르나크의 임종이 가깝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 그가 연금 되어 있는 곳에 달려갔다. 그가 평소에 즐기던 코냑 술이라도 한잔 마시게 해주려는 생각에서였다. 이 친구들 속에는 솔제니친도 끼어 있었다.
그러나 파스네르나크는 죽는 날까지 친구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코냑을 못 마신 것도 물론이었다.
l970년도 노벨 문학상은 솔제니친이 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어쩌면 그가 파스네르나크보다 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 아닌가 염려되고도 있다. 이미 그는 작가동맹에서도 쫓겨난 채 리야잔이란 시골도시에서 반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파스네르나크도 국외로 추방될 뻔한 적이 있다. 이때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조국 안에 있게 해달라고 탄원했다. 그가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것도 당의 의사를 쫓은 것이었다. 언제나 지하신문 사이즈다트의 가장 날카로운 필자로 소련정부의 골치를 썩혀오던 솔제니친이 성할 리는 없을 것이다.
솔제니친에게는 망명의 기회는 있었다. 이것을 거부한 것은 파스네르나크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러시아의 양심을 상징한다는 그는 차마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나 암 병동에 갇혀있는 것과 다름없는. 동포 러시아인들을 저버리고 혼자 편해지기가 싫어서였다.『한 나라가 한 위대한 작가를 가지는 것은 또 하나의 정부를 가지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이유야말로 어떠한 정부도 위대한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 까닭인 것이다.』이렇게 솔제니친은 자기의 작품 속에서 쓴 적이 있다. 이런 솔제니친도 파스네르나크처럼 끝내 압력에 굽혀 혹은 노벨상을 거부하게되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오직 「자유」와 그리고 그「자유」를 부르짖는 인간의 존엄성을 유일한 테마로 삼아온 그가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그는 그저 스탈린 치하의 암흑면을 폭로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우리에게 끈덕지게 알려주려 애써온 메시지 자유를 좀먹는 모든 형태의 폭력에 대한 강인한 저항정신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보다도 거대한 체제에 맞서려는 그의 준엄한 자세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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