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귀국 … 급한 숙제 ①] 영수회담 불가피한데 … 국정원 개혁 발언 수위가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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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7박8일간의 러시아·베트남 방문을 마치고 1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해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와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규현 외교부 차관, 최 원내대표, 박 대통령, 김기춘 비서실장,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최승식 기자]

11일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에겐 풀어야 할 국내 현안이 산적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히 결정을 내려야 할 사안이 여야 영수(領袖)회담이다. 민주당이 40여 일째 이어지는 장외투쟁을 접고 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수순이다. 야당의 생리상 장외투쟁을 접으려면 당 지도부가 강경파를 설득할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영수회담이 그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주에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때문에 그에 앞서 박 대통령이 귀국보고회 형식으로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만날 수 있다는 관측이 여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민주당 김한길 대표에게 어떤 선물을 줄 수 있느냐는 점이다. 김 대표는 11일 천막당사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부에서 대통령이 야당 대표에게 해외순방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말하기도 하지만 국정원 개혁이 말해지지 않는 어떠한 만남도 무의미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먼저 국정원 국기문란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과 책임자의 성역 없는 처벌, 국회 주도의 국정원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히고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박 대통령이 “대선 때 국정원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고 못을 박은 이상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사과하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게 여권의 일관된 입장이다. 또 남재준 국정원장을 해임하라는 민주당의 요구도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류다. 다만 여권 관계자는 “이전 정권에서 국정원이 선거개입 논란을 빚은 점에 대해 박 대통령이 포괄적으로 유감을 표시하고 재판 결과에 따라 엄정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하는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또 국회에 국정원 개혁 특위를 설치하자는 민주당 요구도 협상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별도 특위 설치가 부담스러우면 정보위에 국정원 개혁 소위를 설치하는 것으로 타협을 볼 수 있다. 회담 형식은 민주당이 요구하는 ‘2+5 방식’, 즉 박 대통령과 김한길 대표가 먼저 양자 회담을 한 다음 여야 대표, 원내대표가 모두 참석하는 5자 회담을 하는 형태를 수용하는 방안을 놓고 청와대와 새누리당 측이 협의 중이다. 일부에선 “만약 김 대표가 양자 회담에서 별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5자 회담을 거부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하지만, 협상파들은 “야당 대표가 그럴리 없다”고 설득하는 중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은 순방 기간에도 청와대 정무라인으로부터 정국 상황을 보고받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야당과 관련된 상황과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요구까지 모두 보고를 해서 박 대통령이 다 알고 있다”며 “아직까지는 새로운 지침이나 변화된 입장이 나오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곧 판단을 내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에 야당에서 터져나온 ‘나치 만행’ 발언 등에 대해 한때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정국 정상화를 위해 야당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확고하다고 한다. 이날 오후 박 대통령의 귀국장엔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모습을 드러내 영수회담 등 현안과 관련해 교감을 나눈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여야 원내대표단은 12일 오전 여의도 한 식당에서 만나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다만 새누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영수회담이 성사되려면 무엇보다 회담 이후엔 야당이 장외투쟁을 접는다는 약속이 전제돼야 한다. 김한길 대표가 그에 대한 보장을 하지 못한다면 대통령이 회담에 나갈 이유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글=김정하·강태화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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