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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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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한때 분별없이 번져나갈 듯만 싶던 아리랑 드레스라는 야릇한 한복이 그동안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이것은 단지 왜곡된 한복이라는 감상에서라기보다는 아름다움도 세련도 없는 부자유한 억지의상이라는 점에서 나는 은근히 그것이 속거간리하기를 바랐었다. 특히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파티에서 만나는 아리랑드레스의 여성들을 유심히 바라보았고 더구나 색동으로 저고리나 치마를 지어 입은 중년부인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과연 한복의 아름다움을 가늠할 줄 아는 부인인가를 의아스러워 하기도 했다.
집안에 노락각시가 번지면 담벼락마다 써 붙이는 속거천리라는 부적문귀가 지금도 언뜻 내 머리에 생각난 것은 매우 민망스러운 일이지만 아마도 그러한 억지 의상은 바라보기가 분명히 역겹다는 뜻이 될 것이다.
미니니 맥시니 하는 서양의 유행이 한국시골에까지 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요즈음 현대식 한복이라서 안될 것이 있을까 싶을지도 모르지만 성장한 아리랑드레스나 색동옷이 끝내 기를 못 펴는 것은 분명히 양식 있는 현대 여성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눈에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는 뜻이 아닌가 한다.
명동이 아니라도 서울거리에서 만나는 세련된 양장 여성의 맵시는 동경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말을 자타가 자랑스럽게 할 만큼 지금 서울의 양장은 시골티를 벗었다고들 말한다.
어쨌든 진짜 세련된 한복 맵시를 지금거리 에서 바라보기는 매우 힘드는 세태가 되어버렸지만 한복여성들에 대한 최소한도의 주문을 꼭 한가지만 말하라면 한마디만 해두고 싶은 말이 있다. 즉 저고리 깃을 단정하게 여민 본래의 한복미를 꼭 되살려 달라는 말이다. 현대의 양장이 자연스러운 육체미의 발로와 활동적인 기능에 기조를 두었다면 한복의 아름다움은 감추어진 아름다움과 청초한 맵시를 자랑삼는 것이므로 앞깃을 헤벌어지게 마름질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한복미의 본질을 흐트러뜨리는 것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늦은 앞가슴의 맵시란 한복에 있어서는 첫손을 꼽는 금기라고할 수 있으며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쓸개 없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부인들의 저고리 깃을 느른 잡는 유행은 맨 처음 요점주변에서 일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것이 분별 없는 바느질집을 통해서 일반가정에 감염되어온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때 마침 추석명절에 즈음해서 한복차림의 청초한 부인들의 맵시를 평상시보다 더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나는 나 나름대로의 한복미에 건 소망을 여기에 중얼거려 본다. 최순우<주물관미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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